이경래 신부 칼럼  
 

부르심과 선택(여성선교주일)
작성일 : 2022-09-04       클릭 : 24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20904 여성선교주일

신명 30:15-20 / 갈라 3:26-29 / 루가 14:25-33

 

 

 

부르심과 선택

 

인생을 살다보면 중요한 선택을 할 때가 있습니다. 선택하기 전에는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지만, 그 중 하나를 선택함으로 인해 인생의 길은 점점 구체화되고 선명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 선택은 일회적이기도 하고 때론 몇 차례에 걸쳐 일어나기도 합니다. 여기 계신 우리 모두는 그런 선택들의 결과, 지금의 나로 살고 있습니다. 아마 나이가 들수록 그런 선택의 기회는 점점 줄어들겠지만, 젊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선택의 여지가 아직 좀 많겠지요.

오늘 독서와 복음은 선택(choice)’에 대한 말씀입니다. 1독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종살이를 탈출하여 40년 광야생활을 마무리하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하느님 앞에서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 중에 어떤 길을 택할 건지를 숙고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복음에선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 받았을 때 과연 그 길을 잘 갈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오늘 전례독서, 특히 제1독서를 읽고 묵상할 때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1999년 이 영화가 상영되었을 때, 사람들은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공상과학영화(Science Fiction Film)와는 차원이 다른 여러 가지 철학적 주제-인간과 기계와의 관계, 현실과 가상세계와의 관계, 기계문명이 지배하는 미래사회 속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 구원의 문제 등을 던져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기술적으로 보면 참신한 영상미학을 표현하고 있지만, 동시에 내용적으로는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를 잠깐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는 앤더슨은 가끔씩 네오(Neo)라는 닉네임으로 해커생활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에서 유명한 해커로 알려져 있는 모피어스(Morpheus)라는 해커를 접촉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지금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의문도 생기고, 또 모피어스가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호기심도 있어서 결국 그를 만나게 됩니다. 그 만남의 자리에서 모피어스는 네오라는 앤더슨에게 당신이 살고 있는 사는 곳은 진짜 세상이 아닌 가공된 세계이고 진짜 세계는 다르다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에게 빨간 약과 파란 약을 주면서 다음과 같이 유명한 말을 합니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네, 이후로는 되돌아 갈 수 없어. 당신이 파란 약을 취하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 당신은 잠에서 깨어 당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며 살아가면 돼. 당신이 빨간 약을 먹으면, 당신은 놀라운 세상에 머물게 될 거네. 나는 토끼굴이 어디까지 있는지 그 끝을 보여줄 거야. 기억하게. 난 오직 진실만을 보여줄 뿐 다른 것은 없네. (This is your last Chance. After this, there is no turning back. You take the blue pill, the story ends. You wake up in your bed and believe whatever you want to believe. You take the red pill, you stay in Wonderland. And I'll show you how deep the rabbit hole goes……. Remember, all I'm offering is the truth, nothing more.)"

그 이후 이야기는 영화를 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그는 빨간 약을 선택했고, 거짓세계 뒤에 있는 진실의 세계를 알고, 뒤틀린 세계를 회복하기 위해 투신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도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 가지 길을 제시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는 불행, 저주, 죽음의 길이요, 다른 하나는 행복, 축복, 생명의 길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 종살이의 고통과 40년 광야생활을 통해 영적으로 단련받았다하더라도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오랜 세월 정착하여 살다보면, 그 지역 민족들과 국가들의 발달된 문명을 점차 모방하게 되고, 그리하면 처음에 하느님과 맺었던 계약의 정신이 점차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느님을 통해 체험한 해방과 자유, 그리고 평등의 정신 대신 더 풍성한 부를 누리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지배하고, 착취하는 그 당시 주변나라의 풍속에 물들게 돼서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이 흔들려 마침내 나라가 멸망하게 됩니다. 사실, 백성들은 눈앞에 펼쳐진 가나안 땅을 보고 야훼 하느님께 생명의 길을 선택하겠다고 맹세했지만, 그 이후 역사는 그들이 결국에는 죽음의 길로 가게 되었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바빌론 유배를 겪었고, 예수님 승천 후, 그들은 로마제국에 의해 처절하게 짓밟혀서 거의 2000년 동안 전 세계를 떠돌게 되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려는 사람들에게 마음가짐을 단단히 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가 14:27)” 그리고 또다시 다음과 같이 강조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버려야 한다.(루가 14:33)” 이 두 말씀 사이에 예수님은 두 가지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하나는 탑을 세울 때 드는 비용을 계산하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전투 전에 아군과 적군의 군사력을 비교하는 이야기입니다. , 건물을 지을 때 자금력이 제대로 되는지, 전쟁을 치룰 때 내 군사력이 감당할 수 있는지, 없다면 어떡해야 하는지 매우 현실적이고 상식적인 차원에서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단지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일상 속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때도 필히 현실을 직시하고 고려해야 합니다. 그래야 건물을 짓기 시작해서 마치지 못하는 낭패와 자신의 군사역량을 고려하지 못하고 무모하게 적군과 싸워서 참패하는 꼴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선택응답에 대한 가르침은 매우 이성적이고 현실적이고 그래서 때론 엄격하기도 합니다.

복음의 다른 부분에서도 나오지만 이러한 예수님의 요구에 대하여 부자청년은 낙담하고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떤 분들은 예수님의 이러한 부르심과 거기에 대한 우리의 응답과 선택을 부담스러워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분들은 흔히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는 아직 준비가 되질 않았습니다.”, “여건이 되면 다음에 하겠습니다.” 이것은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도 흔히 보이는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완벽해야 한다는 관념이 있어서 완벽하기 전까지는 선택을 미루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완벽주의(perfectionism)' 습성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집착형 완벽주의가 있고, 다른 하나는 게으른 완벽주의가 있습니다. 집착형 완벽주의란 자신이 목표설정을 높게 잡고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을 지나치게 하는 바람에, 정신적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에 반해 게으른 완벽주의는 일을 하기도 전에 생각만으로 완벽을 추구하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해서 결과적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선택과 응답의 기준은 위에서 말한 그런 완벽주의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선적으로 우리들이 어떤 선택을 하기 전에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라고 하십니다. 만일 내가 어떤 선택을 할 때, 나의 능력과 주변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선택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비관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로 움츠려 들 필요는 없습니다. 양 극단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사실, 성서를 보면 하느님이 예언자들이나 사도들을 부르실 때, 그들은 처음에 자신의 부족한 모습에 겁을 먹고 선택하지 못했습니다. 그럴 때 하느님은 그들에게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부자청년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자만에 대해선 엄격한 조건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생활이나 일상생활이나 항상 균형 잡힌 태도를 지녀야 합니다. 다시 말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있는 그대로의 나,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보는 균형 감각이 필요합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우리는 여성선교주일로 예배를 드립니다. 오늘 주보 앞머리에 소개한 어머니연합회 창설자 메리섬너(Mary Sumner)를 비롯하여 수많은 어머니 연합회 회원들, 그리고 우리 교단 내에 있는 많은 여성단체 회원들, 각 교회에 있는 여성교우들을 비롯하여 여성사제들은 우리 성공회가 특정 성()에만 집중된 편협한 교회사목과 선교의 틀을 깨고 주님의 보편적 부르심에 하고 응답하고 그 길을 기꺼이 선택하신 분들입니다. 그 중에는 자신의 역량이 이 부르심을 잘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하신 분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우리 측면에서 보자면 나의 선택이지만, 하느님 측면에서 보자면 거룩한 부르심입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은 우리 역량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무한한 은총으로 이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함께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여성선교주일을 맞아 지금까지 우리를 이끌어 주신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주님께서 우리 교회에 여성일꾼들을 불러주시고 함께 해 주시길 간구합시다. 아울려 이달에 있을 교회위원 선거와 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교회 공동체의 요청에 잘 응답하고 선택할 수 있는 일꾼들이 뽑히길 기도합시다.

우리를 당신의 제자로 불러주시고 힘을 주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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