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예수의 세례, 우리의 세례(주님의 세례축일)
작성일 : 2023-01-15       클릭 : 137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0230115 주님의 세례축일

이사 42:1-9 / 사도 10:34-43 / 마태 3:13-17

 

 

예수의 세례, 우리의 세례

 

 

우리 한옥성당 입구에는 돌로 만든 세례대가 있습니다. 거기에 한자로 중생지천(重生之泉)’이라고 씌어있습니다. ‘새로이 태어나는 샘이라는 뜻으로 세례대의 특징을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세례대의 또 다른 면에는 자신을 수양하라는 수기(修己)’, 마음을 씻어내라는 세심(洗心)’, 악을 몰아내라는 거악(去惡), 그리고 선을 행하라는 작선(作善)’등의 단어가 새겨져 있습니다. 저는 이 말들을 보면서 수덕신학(修德神學)의 핵심을 간단하면서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고 봅니다. 수덕신학(ascetical theology)이란 사막의 은수자들이나 수도자들이 하느님이 주신 새로운 삶을 잃어버리지 않고 이를 바탕으로 하느님을 닮기 위한 완덕(完德)을 목표로 꾸준히 자신을 갈고 닦는 수도(修道)의 길을 가는 방향을 제시하는 실천적인 학문입니다. 그래서 악을 물리치고 선을 행하고 마음을 정결하게 함으로서 자기를 수양하는 것이 핵심적인 실천내용입니다. 마치 옛 선비들이 자신을 수양했던 유학의 수양론(修養論)과 비슷한 실천학입니다. 그렇지만 오늘날은 이것을 영성신학(spiritual theology)이라고 변경해서 부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수덕이라고 하면 주로 인간의 노력에 강조점을 두기 때문에, 하느님의 신비스런 은총을 소홀히 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래 수덕신학과 신비신학(mystical theology)으로 따로 다룬 것을 오늘날은 영성신학이란 이름으로 통합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19세기 말 20세기 초 당시 고전적인 신학전통을 따랐던 우리성당의 세례대는 그리스도교 수덕전통의 핵심을 아주 충실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세례는 바로 이러한 수덕의 길로 들어서는 중요한 예식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제2독서는 초기 교리교육의 본질입니다.

베드로는 이방인 고르넬리오 집에서 주님의 진리를 가르칩니다. 그런데 이 설교에 앞서서 베드로는 하늘로부터 신비스러운 비전을 봅니다. 그것은 하늘이 열리고 큰 보자기와 같은 그릇이 내려오는데, 그 안에는 유대교 율법에 먹지 말라고 규정한 생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하늘로부터 먹어라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베드로가 화들짝 놀라며 거절하자,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라(사도10:15)”라는 음성을 들려왔습니다. 그 후, 고르넬리오라는 이방인이 가족들과 함께 주님을 영접하고 싶다는 전갈을 들은 베드로는 방금 본 계시가 이방인들에게도 하느님의 구원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들은 독서 바로 뒤를 이어 세례가 행해질 때 성령께서 임재하시는 광경이 벌어집니다. 그러므로 오늘 제2독서는 그리스도교 선교역사상 하나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된 큰 사건인 것입니다.

맨 처음 요르단 강에서 유대인들을 향하여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외친 세례자 요한의 회개운동은 예수님의 세례를 통해 단순히 회개차원에서만 머문 것이 아니라, 성령의 임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중생, 즉 거듭난다는 것으로 격상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후, 성령으로 태어난 초대교회에서 베푸는 세례가 오늘 독서에서 들었듯이 이제 고르넬리오로 대표되는 모든 민족으로까지 뻗어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복음에 나오는 주님의 세례를 온 세상민족을 거듭나게 하시려는 하느님의 커다란 구원섭리라는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세례자 요한의 세례는 회개운동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죄를 뉘우쳤다는 것을 세례의식으로 확인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의로운 예수께서 오시자 세례자 요한 입장에서는 예수님은 세례 받으실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지금은 내가 하자는 대로 하여라.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마태 3:15)”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오 저자는 이 말씀을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첫 번째 말씀으로 기록하였습니다. , 그 의미는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이 예수님이 앞으로 하실 사명(Mission)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요?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는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죄에 빠지고, 상처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하느님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믿어주는 자, 마음에 들어 뽑아 세운 나의 종이다. 그는 나의 영을 받아 뭇 민족에게 바른 인생길을 펴 주리라. 그는 소리치거나 고함을 지르지 않아 밖에서 그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갈대가 부러졌다 하여 잘라버리지 아니하고, 심지가 깜박거린다 하여 등불을 꺼버리지 아니하며, 성실하게 바른 인생길만 펴리라. 그는 기가 꺾여 용기를 잃는 일 없이 끝까지 바른 인생길을 세상에 펴리라.(이사 42:1-4)”

저는 피정할 때 자주 이사야서의 이 구절을 읽고 묵상합니다. 그럴 때 마다 이 말씀으로부터 많은 영적 위안을 얻습니다. 아마도 초대교회 신자들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신앙인들이 이 말씀을 통해 절망과 좌절의 구렁텅이로부터 용기와 희망을 되찾고 회복되었을 거라고 믿습니다. 공동번역에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이라고 의역하고 있지만, 영어, 중국어 그리고 다른 한국어 성경에는모든 의(righteousness)’라고 번역하고 있고 이것이 정확한 뜻입니다. 여기서 ()’란 매정하게 죄와 불의를 단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이사야서에 나오는 것처럼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님의 마음처럼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사람들을 마음아파하면서 어떻게든 올바른 길로 되돌리려 세심하게 섭리하시는 그런 사랑이 담긴 의로움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세례는 세례자 요한의 세례를 보다 한 차원 더 끌어올리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고 물 위로 올라오시자,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17)”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이 이런 분이라는 것을 과시하고 싶어서 그랬을까요? 이것은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어떤 건지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례를 통해 죄에서 해방되고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 날 때,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그리고 마음에 드신다고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기쁨선언인 것입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대부분은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어떤 이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아기일 때 유아세례를 받은 분들도 있을 거고, 어떤 분들은 커서 세례를 받은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어떤 분들은 세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준비하고 계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세례가 경문을 읽고, 물로 이미를 적시고, 이마에 기름을 바르는 단순한 상징예식이긴 하지만, 오늘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설교에서 들었듯이 그 안에는 우리가 다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깊은 사랑과 정의가 담겨있습니다. 성부 하느님은 그것을 성자 예수님을 통하여 그 사랑을 보여주셨고, 마침내 성령의 계시로 어부 베드로의 눈을 열어주시어 온 세상 사람들에게까지 퍼져나갈 수 있는 문을 열어주신 구원섭리가 담겨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시길 바랍니다.

그러한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의 의가 이제 여기 있는 우리 각자에게 내렸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더 이상 구원의 문 밖에 서 있는 이방인들이 아닌 하느님 보시기에내 사랑하는 아들과 딸, 내 마음에 드는 아들과 딸들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의 참된 가치를 깊이 느낀다면, 우리는 살면서 어떠한 역경이 와도 쓰러지지 않고, 상한 갈대처럼 상심해 있어도 하느님의 은총으로 능히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느님의 은총에만 마냥 의지하고 나의 노력을 방치하면 안 됩니다. 우리 성당 세례대에 적혀있는 대로 악을 물리치고, 선을 행하면서 끊임없이 마음을 정결하게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하느님의 은총은 우리를 더욱더 거룩하게 해서 세례의 은총으로 날마다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고 행하는 세례의 진리입니다.

우리를 물과 성령으로 거듭 태어나게 하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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