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아름다움(美)과 성스러움(聖)이 만나는 제사(설 명절)
작성일 : 2023-01-22       클릭 : 150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30122 설 명절

민수 6:22-27 / 야고 4:13-17 / 마태 6:19-21, 25-34

 

 

아름다움()과 성스러움()이 만나는 제사

 

 

동아시아의 전통명절인 설날입니다. 양력으로 이미 2023년이 되었지만, 음력으로 첫날인 오늘에서야 비로소 임인(壬寅)년이 가고, 계묘(癸卯)년이 시작되었습니다. 태양을 기준으로 하는 양력이 도입되기 전, 우리 선조들은 음력으로 시간을 계산했습니다. 그리고 이 계산법은 하늘을 뜻하는 10개의 천간(天干)과 땅을 뜻하는 12개의 지지(地支)를 조합하는데, 올해는 검은 색 수()기운을 상징하는 천간인 계()과 토끼를 뜻하는 지지인 묘()가 결합된 이른바 검은 토끼해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이처럼 하늘과 땅, 음과 양의 조화를 통해 시간을 계산하고, 우리 몸을 진단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해석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서구의 기술과 사상을 흡수하여 빠른 성장을 이루었지만, 한편으론 우리조상들이 물려주신 삶의 지혜를 계승하는데 좀 소홀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런 의미로 우리는 서양과 동양의 지혜를 통합적으로 수용하여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성숙하고 풍요로운 삶이되길 희망합니다.

예부터 설날과 추석이 되면 온 집안 식구들이 모여 차례를 지냅니다. 차례 상에는 정성스럽게 장만하고 요리한 음식들이 올라갑니다. 이것은 돌아가신 조상들께 드리는 자손들의 지극한 효심인 것입니다. 그런 다음 예()에 따라 차례를 드립니다. 차례가 끝난 다음, 조상께 드린 음식을 후손들이 다 함께 맛있게 먹습니다. 참 아름다운 풍속입니다.

오늘 설 명절을 맞아 아름다움이란 가치에 대하여 한 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말을 눈에 보이는 외적인 모습을 평가하는 데 주로 사용합니다. 그런데 아름다움을 뜻하는 ()’는 원래 제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라는 한자를 분석하면 위쪽엔 ()’이 있고, 아래쪽엔 ()’가 있습니다. 커다란 양이란 뜻입니다. 다시 말해 크고 살지고 맛이 좋은 양을 제사에 희생제물로 바쳤던 것입니다. 이처럼 커다란 양을 신()께 바치고 인간의 소원을 빌며 신의 가호와 축복을 염원한 것이 고대사회의 제사였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성스런 제사와 아름다운 희생제물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름답다는 것은 달리 표현하면 성스럽다는 의미를 내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근대와 현대에 접어들면서 아름다움이 갖고 있는 성스러움의 속성이 점점 없어져서 이제 아름답다는 것은 지극히 속물적이고 현세적이고 감각적인 차원만 남게 되었습니다. 마치 영혼이 빠진 육신만 남게 된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예배에서 하느님의 어린 양(Agnus Dei)’이란 찬양이 있듯이, 양은 동양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매우 중요한 동물입니다. 특히, 고대 중동지역에선 신께 제사드릴 때 아직 생식행위를 하지 않은 어린 양을 순결함의 상징으로 여겨서 이것을 희생제물로 바쳤습니다.

이와 같이 큰 양을 바치는 동양이건 어린 양을 바치는 서양이건 중요한 것은 신께 예물을 바칠 때 가장 값진 것을 드렸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종교적 의미는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부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신 예수님에 대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어린 양이라고 칭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의 감사성찬례는 가장 최고의 희생제물인 하느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바치는 것이요, 그것을 기념하고 감사하는 제사인 것입니다. 동시에 그러한 제사에 우리 역시 동참한다는 뜻으로 우리 각자가 가진 봉헌예물을 제단에 바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제사에 드린 양을 후손들이 함께 나누어 먹었듯이, 우리 예배 또한 대속물로 봉헌하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십니다. 또한 우리가 드린 봉헌예물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그리고 교회가 하는 선교와 사목을 위해서 값지고 귀하게 사용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우리는 아름답다고 합니다. 이제 거룩한 제사와 아름다운 나눔이 서로 하나가 되어 우리와 이 세상을 풍요롭게 하고 더욱 값지게 만듭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이 제사, 우리 그리스도교식으로 표현하자면 예배를 통해 내려주시는 아름다운 축복이자 성스러운 은총인 것입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설날은 우리민족의 아름다운 미풍양속인 동시에 그리스도교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하느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시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은총의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차례를 지낸다는 것은 단순히 조상들을 기억하고 그분들에게 복을 비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창조자이시며 우리를 죄로부터 대속하신 구원자이신 주님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제사인 예배를 통해 살아있는 우리와 돌아가신 조상들이 주님 안에서 모두 축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제1독서 민수기는 사제들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복을 빌어주라고 하십니다:

야훼께서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며 너희를 지켜 주시고, 야훼께서 웃으시며 너희를 귀엽게 보아 주시고, 야훼께서 너희를 고이 보시어 평화를 주시기를 빈다.”(민수 6:24-26)

이처럼 축복은 우리 신앙인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덕목입니다. 그래서 우리 전례에도 예배를 마칠 때, 사제는 삼위일체 주님의 이름으로 신자들에게 강복(降福)합니다.

계묘년 한 해가 밝았습니다. 우리가 이날에 모두 모여 돌아가신 선조들을 기념하며 예배드릴 때, 조상들 역시 하느님과 함께 살아있는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 예배드림을 믿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예배, 그리스도교의 제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후손들과 저 세상에서 살고 있는 조상들이 다함께 어우러져서 창조주이자 구원자이신 하느님을 향해 찬양과 감사를 드리고 복을 받는 아름답고 거룩한 시간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은총으로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아름다워지고 거룩해지기를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간구하며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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