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엠마오로 가는 길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해 부활3주일)
작성일 : 2023-04-23       클릭 : 235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30423 가해 부활3주일

사도 2:14, 36-41 / 1베드 1:17-23 / 루가 24:13-35

 

엠마오로 가는 길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우리는 매일 길을 걷습니다. 학생들은 매일 배우기 위해 학교로 가는 길을 걷습니다. 직장인들은 일터를 향해 걷습니다. 만약 일터가 멀다면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갑니다. 그 밖에 여행을 가거나 약속장소로 가기 위해 우리는 을 이용합니다. 길은 우리 삶에서 뗄래야 뗄 수 없는 중요한 수단이자 과정입니다. 그런데 단지 보이는 것만 길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성장하기 위한 과정, 출세하기 위한 과정, 궁극적으로는 깨달음을 얻는 과정도 로 표현합니다. 이러한 길에 대한 사색을 할 때, 저에겐 늘 떠오르는 철학자가 있습니다.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배운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카알 야스퍼스(Karl Jaspers)입니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 히틀러의 나치치하에서 교수직을 박탈당했을 뿐만 아니라, 아내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죽음의 공포라는 한계상황 속에서 버텨내야 했습니다. 그 속에서 그는 길 위에 있음(auf dem Wege sein)’이라는 자신의 철학사상을 수립해 나갔습니다. 그는 절대적 권위, 폐쇄적인 독재, 이념이나 종교를 절대화하는 교조주의를 거부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자는 늘 길 위에서 걸어가는 다시 말해, 구도자와 같아야 하며, 그것은 독선적인 모습이 아니라 친교를 통해 진리를 향해 한발한발 걸어가야 한다고 설파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은 예수님의 발현 이야기 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인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일어났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크나큰 실망과 좌절에 빠진 인간이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서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 그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들의 내면의 변화 혹은 신앙발전의 단계라고도 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시선을 엠마오로 가는 사람들을 따라 하나씩 따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침통한 표정으로 엠마오로 돌아가는 두 사람을 봅시다. 이들이 예수님의 12제자들 중 하나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약 10킬로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돌아갔다는 걸로 보아, 아마도 예루살렘 근방 엠마오에 거주하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된 후, 그분을 따르던 제자들이 각자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던 걸 보면, 그들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12제자들처럼 로마의 식민지와 헤로데의 폭정으로부터 자기들을 해방시켜 줄 메시아를 고대했고, 예수님께 그러한 희망을 걸었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대사제들한테 붙잡혀서 로마 빌라도 총독에 넘겨져 십자가형에 달려 죽자, 또다시 깊은 절망에 빠졌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모든 것이 무상(諸行無常)’해졌습니다. 희망이 사라진 정신적 죽음의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을 떠나기 직전, 여인들로부터 이상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여인들이 그분의 무덤에 갔더니, 그 분의 시신이 없는 빈 무덤이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천사들이 그녀들에게 그 분은 살아 있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무덤에 가보니, 과연 비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당시 사람들의 관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여자들의 증언을 믿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남자들이 증언해야 그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그래서 천사들이 살아있다고 증언한 여인들의 말을 믿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무덤은 비어 있어서 뭐가뭔지 도통 혼란스러운 상태였습니다.   

이처럼 절망과 혼란스러운 귀향길에서 예수님이 부활했는지 아닌지 옥신각신하던 와중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가와서 동행(同行)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분이   부활한 예수님이라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이점은 우리 신앙과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통찰을 줍니다. 그것은 제자들이 비록 예수님을 버렸지만, 예수님은 여전히 제자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함께 길을 걸으셨듯이, 우리가 비록 예수님을 모르거나 홀로 걸어간다고 느낄지라도, 예수님은 우리와 동행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엠마오로 가는 사람들처럼 우리 역시 그러한 주님을 못 알아볼 뿐입니다.

낙심과 혼란, 그리고 무의미한 논쟁 중인 그들에게 예수님은 진리를 알려줍니다. 예수님은 성경에 약속된 이스라엘의 해방에만 관심을 가졌던 그들에게 그 해방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고난과 관련된 예언자들의 메시지의 참 의미를 설명해 주십니다. 이를 통해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에 뜨거운 감동을 받습니다.

어느덧 날이 저물어 갑니다. 그들은 예수께 “여기서 우리와 함께 묵어 가십시오(요한 24:29)라고 초대합니다. 그리고 식탁에 음식을 준비하고 함께 앉습니다. 예수께서 빵을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빵을 떼어 그들에게 나눠 주셨을 때, 비로소 그들은 눈이 열리어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최후의 만찬 때 그리고 평소에 그분과 함께 감사의 기도를 하고 빵을 떼서 먹던 그 장면! 그리고 그것을 행하시던 예수님의 익숙한 모습이 겹치면서 그들은 마침내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반전이 일어납니다. 고향으로 돌아갔던 그들은 발길을 돌려 도망쳐 나왔던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그것은 이 놀라운 사실을 한시라도 빨리 알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절망과 혼란에 빠진 그들이 부활한 예수님의 말씀과 빵으로 180도 변화되어 기쁨과 희망의 존재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들은 길 위에서 진리를 만났고, 그 진리로 변화되었고, 이제 그 진리를 전하는 사도들로 변한 것입니다. 부활의 은총이 그들의 존재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하고 있는 예배는 바로 엠마오로 가는 사람들이 겪은 그 길을 걷는 것 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직장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고단하고 힘든 모습으로 교회예배에 참석합니다. 이 예배 중 말씀의 전례에서 엠마오로 가는 길에 주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처럼 우리도 말씀을 통해 깨달음과 감동을 받습니다. 그리고 성찬의 전례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빵을 떼시고 나눠 주신 예수님을 알아본 사람들처럼 우리도 빵과 포도주의 축성과 감사기도 그리고 영성체를 통해 주님을 내 안에 모십니다. 그리고 파송 예식에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기쁜 소식을 전한 사람들처럼 우리 각자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 부활한 예수의 증인들로 살아갑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의 체험은 어쩌면 초창기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예수님의 현존을 체험했는지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의 전례에서 성경말씀을 들을 때 예수님의 현존을 느꼈고, 이어서 성찬의 전례에서 빵을 뗄 때 그분의 현존을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로마의 엄혹한 박해에도 그 기쁨과 희망을 놓지 않고, 꾸준히 부활의 증인이 되어 마침내 선교의 지평을 넓혀 나갔습니다.

부활 세번째 주일! 여러분은 지금 길 어디쯤 와 계십니까? 침통한 표정으로 예루살렘을 빠져나온 사람들과 같이 계십니까? 그럴 때 이점을 명심하십시오. 여러분이 비록 낙심하고 홀로 이 길을 걷는 것 같지만, 주님이 옆에 와 걷고 계신다는 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내 옆에 와 계신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감동받고 계시다면 다음과 같이 기도하십시오. 예수님의 말씀뿐만 아니라 말씀자체이신 당신과 한 몸이 되고 싶다고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여러분 안에 오셔서 여러분이 예수님으로 변모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분을 증언하면서 그 분이 가신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그 길은 고난의 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영광의 길이기도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사람들을 변화시켜 줬듯이, 여기 우리들도 그 뜨거운 감동으로 변화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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