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어둠 속의 빛(가해 연중21주일)
작성일 : 2023-08-27       클릭 : 48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30827 가해 연중21주일

출애 1:8-2:10 / 로마 12:1-8 / 마태 16:13-20

 

 

어둠 속의 빛

 

 

교회력으로 1228일은 죄 없는 아기들의 순교기념일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이 날의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기예수를 경배하기 위해 온 동방박사들에게 헤로데는 경배 후, 그곳과 그 아기를 자신에게도 알려달라고 했지만, 꿈에 천사가 나타나 동방박사들에게 헤로데한테 가지 말고 자기나라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받고 박사들은 그대로 실행합니다. 동방박사를 기다리던 헤로데 왕은 나중에 그들이 그대로 돌아가 버린 사실을 알고 분노하게 됩니다. 그래서 베들레헴과 그 일대에 사는 갓난아기들을 살육합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 사건 직전에 주의 천사가 요셉에게도 이집트로 피신하라가고 해서 예수님 가족은 화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비극적인 일에 대해서 교회는 크리스마스의 기쁨에도 불구하고 이 날을 기억합니다.

마태오 복음에 나오는 이 사건은 사실 오늘 우리가 들은 출애굽기 앞부분 모세가 태어날 무렵 상황과 비슷합니다. 요셉과 야곱의 12아들들에게 호의적이었던 파라오가 죽고, 오랜 세월이 흘러서 이집트 왕조는 변화를 겪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제1독서의 시대상황은 히브리민족을 비롯하여 주변민족들에 호의적이었던 왕조에서 이민족들에게 적대적인 왕조로 교체된 상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집트인들은 이민족들을 자신들의 국가에 필요한 각종 힘든 일들, 특별히 도성을 건설하는 인부들로 강제노역을 시켰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보다 상대적으로 급속하게 늘어나는 인구증가에 심한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남자아기들은 살해하라는 비인도적인 산아제한 정책을 실시하였습니다.

성경은 산파들이 지혜롭게 처신해서 위기를 모면하였다고 증언하곤 있지만, 이것은 그러한 산파를 만나서 위기를 모면한 운 좋은 사람들의 경우였을 것이고, 아마도 많은 경우 태어나자마자 바로 살해당하는 비극적인 일들이 비일비재했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마태복음 저자는 베들레헴에서 자행된 영아들의 학살소식을 듣고, 그 옛날 자신의 조상들이 이집트 땅에서 비참하게 당한 비극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주 오래전 그들의 조상은 이민족의 나라 이집트에서 노예로서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짐승처럼 취급받았고, 예수님 시대에도 여전히 로마제국의 꼭두각시 왕 헤로데 치하에서 식민지 백성들로 학대받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외면상 나라가 있고 없고 차이는 있지만, 본질적으론 여전히 온전한 백성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불행한 처지였던 것입니다. 참으로 모세시대나 예수님 시대나 히브리민족의 처지는 깊은 어둠 한 가운데 있는 절망적인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어둠 속에서 우리는 가냘픈 빛을 봅니다. 그것은 파라오의 공주가 목욕을 하러 강가에 왔다가 왕골상자에 있는 갓난아이를 발견하고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들어 자신의 아들로 삼은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섭리는 악한 명령을 내리는 근원인 파라오 집안 속으로 들어오셔서 그 집안사람인 공주의 동정심을 통해 생명을 지켜내십니다. 그리고 그녀의 보호와 돌봄을 통해 장차 훌륭한 민족의 영도자가 될 인품과 능력을 길러내십니다. 또한 하느님은 모세의 누이 미리암의 용기와 붙임성을 통해서 모세가 자신의 친어머니에서 유아기를 보냄으로써 히브리인이라는 정서를 간직할 수 있게도 섭리하십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섭리는 깜깜한 어둠과 죄 한 가운데에서도 생명과 구원의 씨앗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십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섭리는 오늘 복음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예수님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식민지 지배 하에서 온전한 백성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감시받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이스라엘의 가장 북쪽 변방지역 필립비의 가이사리아 지방으로 가셨을 때,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던지십니다. 그런데 만일 이 질문을 예루살렘이 있는 유다지방이나 그들의 고향 갈릴래아에서 했다면 아마도 그들을 주변을 의식해서 뻔한 대답을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율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대답을 했다가는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께서는 일종의 사상적 감시망이 느슨한 가장 변경지역에서 제자들이 허심탄회하게 고백할 환경을 만들어 주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여기느냐고 물어보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주변의 평판을 전해줍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단도직입적으로 그들에게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마태 16:16)”라고 고백합니다. 사실, 이 고백은 이전에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2주 전 주일복음에서 들었듯이, 예수께서 물위를 걸어오시고, 예수님을 맞이하러 배 밖으로 걸어 나온 베드로가 물에 빠지자 그를 건지시고 함께 배 안으로 들어오셨을 때, 제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주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마태 14:33)”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는 풍랑이 치고 어수선한 상태에서 자신들도 모르게 고백했다면, 이번에는 조용한 가운데서 숙고하는 가운데 진중한 고백을 한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축복하시면서 그를 바위라는 뜻인 베드로라고 명명하시고, 그 바위에서 당신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여기서 교회라는 말은 4복음서를 전부 통틀어 이곳과 1817절 딱 두 번만 언급됩니다. 신약성경에 표현된 그리스어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라는 뜻은 불러 모음, 불러 모은 이들의 모임이란 뜻입니다. 이제 주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통해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 이들에게 당신의 권한을 주셔서 그 구원사업을 이어갈 교회를 세우고 하늘과 땅을 이어줄 권능을 주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식민지 암울한 상황 속 그것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가장 변방에서 제자들의 신앙고백을 통해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마태오 복음은 베드로의 이러한 신앙고백사건을 기점으로 예수님의 일정에 변화가 일어났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은 주로 당신과 제자들의 고향인 갈릴리 지방에서 복음을 선포하셨다면, 이 일을 계기로 예루살렘을 향해 남쪽으로 방향을 트십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수난여행기가 본격화하게 됩니다. 이제 예수님은 구약의 모세가 이집트 노예로 있던 히브리민족을 탈출시키기 위해 이집트 파라오 궁전으로 향했듯이, 당시 정치와 종교, 경제의 중심인 예루살렘을 향해 하느님의 백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2의 출애굽(Exodus)'을 시작하십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일반적으로 우리는 어둠보다는 밝음을, 실패보다는 성공을, 궁핍보다는 부유함을, 주변보다는 중심에 서 있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인생은 모든 것이 잘 갖춰진 상태로 시작되진 않습니다. 설사 처음부터 잘 갖춰진 상태로 순탄한 인생을 걷는다 해도 기나긴 인생여정에서 우리는 숱한 우여곡절을 겪습니다. 특별히 새로운 삶은 어둠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땅에 심은 씨앗이 어두운 땅에서 생명이 시작되고, 뱃속에 아기가 어두운 엄마의 자궁에서 자라듯이 자연의 섭리나 하느님의 구원 역사(役事)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가장 대표적인 모습이 바로 무덤에 묻히신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그러므로 빛은 어둠에서 잉태합니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죄에 빠진 우리를 구원하실 때 어둠은 어둠으로 머물지 않습니다. 어둠 한 가운데 밝음이 서서히 시작합니다. 신앙인은 그런 면에서 어둠을 어둠으로만 여기지 않고, 그 안에서 밝음의 단초를 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희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희망을 보기 위해선 우리는 믿음이라는 내적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리고 희망과 믿음을 우리가 얻기 위해 노력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사랑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오직 사랑만이 어둠과 죽음을 밝음과 생명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 등장한 이집트 공주와 미리암의 사랑이 있었기에 모세는 죽을 위험에서 생명을 이어갔고 마침내 해방하시는 하느님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의 믿음이 있었기에 예수님은 당신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러한 신앙선조들의 행적을 들은 우리 역시 사는 동안 어둠과 좌절에 압도당하지 말고,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밝히는 사람들이 됩시다.

우리를 당신의 교회로 부르시고 힘을 주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덧글쓰기  

광고성 글이나, 허위사실 유포, 비방글은 사전 동의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이전글 베드로 23-09-03 50
다음글 베드로 23-08-20 75


묵상 영성 전례 옮긴글들
이경래 신부 칼럼 김영호 박사 칼럼

홀리로드 커뮤니티

댓글 열전

안녕하세요?선교사님!
정읍시북부노인복지관 멸치 판매..
원주 나눔의집 설명절 선물세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