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나해 연중5주일)
작성일 : 2024-02-04       클릭 : 58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0240204 나해 연중5주일

이사 40:21-31 / 1고린 9:16-23 / 마르 1:29-39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omnibus omnia)

 

 

전통적으로 사제나 주교는 서품을 받기 전 피정을 합니다. 그 기간에 당사자들은 사제 혹은 주교가 되기까지 지나온 과정을 회상하면서 자신을 불러 주신 주님의 손길을 느끼고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서품 후에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특히 피정 기간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장차 할 사목과 선교의 좌우명으로 삼을 성경말씀을 하나 정합니다. 특별히 주교의 경우는 그 모토(motto)가 단지 개인적인 것을 넘어서 그가 치리할 교구의 방향을 나타내기에 꽤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제가 접했던 주교님들의 서품 성구(聖句) 중 인상적인 말씀은 김수환(金壽煥) 추기경님(1922~2009)의 서품 성구입니다. 그것은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이란 말씀인데, 이것은 오늘 우리가 들은 제2독서 고린도 전서 9장 22절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그 의미가 제대로 드러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제가 번역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가 된 것은 그들을 얻고자 함이요,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된 것은 그들 중 일부라도 구원하고자 함입니다. (1고린 9:23)”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의 선교자세를 간단명료하게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유대인에게는 유대인 방식으로, 이방인에게 이방인 방식으로 행동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이러한 자세는 오늘날에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것을 전하는 자는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문화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를 통해서 주님의 기쁜소식(福音)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김수환 추기경님이 좌우명으로 삼은 ‘omnibus omnia’란 말씀을 신학교 입학했을 때부터 늘 명심하고 다녔습니다. 신학생 시절 때 저를 가르친 은사님들, 그리고 신앙심이 좋으신 교우분들은 저에게 “사제는 편협한 사람이 되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사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에 때로는 부유한 사람이 되기도 해야 하고, 때로는 가난한 사람이 되기도 해야 하고, 때로는 많이 배운 사람들과 대화해야 되고, 때로는 못 배웠지만 소박한 사람들과도 어울릴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훌륭한 사제가 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공부할 때 열린 사고를 갖고자 다양한 지식과 관점을 습득하려고 노력하였고, 방학 때는 다양한 삶의 현장을 체험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결과,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기 위해서 적지 않은 지식과 경험을 갖추게 되었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뭔가 핵심적인 것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저 자신, 즉 “나는 나에게 모든 것이 되고 있는가?”라는 물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물음의 깊은 곳에는 나라는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서 불러 주시고, 그 삶을 지탱해 주시고, 동행해 주시고, 마침내 자유와 해방과 구원으로 이끌어 주시는 주님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외딴 곳으로 가시어 기도하고 계셨다’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사람들이 찾고 있다고 하자, 다른 곳으로 전도하러 가자고 하십니다. 이것은 어쩌면 사제를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하고 본질적인 메시지를 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전도하는 것, 그리고 그 전도를 효과적으로 잘 하기 위해서 다양한 지식을 공부하고 경험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것을 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여기서 기도란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해 주시는 근거인 하느님이 참으로 나를 사랑하셔서 생명을 주시고 내 인생길을 함께 걸어가신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힘들어 할 때 그 소리를 들어주시고 위로와 힘을 주시며 마침내 나를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깊이깊이 느껴서 내가 주님의 사람으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사도 바울이 하신 말씀을 공감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한다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매여 있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 그리하여 그들과 다 같이 복음의 축복을 나누려는 것입니다. (1고린 9: 16, 23) 

사실, 전도하고 복음을 선포하고 병자를 치유해 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도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그 기도를 통하여 예수님은 성부 하느님이 당신을 얼마나 사랑해 주시며, 당신의 온 삶을 떠받혀 주시고 함께 하고 계시는지 생생하게 체험하였습니다. 바로 그러한 기도와 그로부터 나오는 힘이 예수님을 세상을 향해 하느님 나라가 왔다고 사자처럼 힘차게 선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지식은 오늘 복음에서 마귀들이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안다는 지식과는 차원이 다른 지식입니다. 마귀들이 아는 지식은 그저 알고 있다는 차원이고, 그러한 지식은 자신과 이웃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그러나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하나된 지식은 나를 변화시키고, 이웃을 치유하고, 세상을 해방시키는 강력한 힘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힘입니다.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와 시편은 바로 그 힘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야훼께서는 영원하신 하느님, 땅의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힘이 솟구쳐 피곤을 모르시고, 슬기가 무궁하신 분이다. …… 야훼를 믿고 바라는 사람은 새 힘이 솟아나리라. 날개쳐 솟아오르는 독수리처럼 아무리 뛰어도 고단하지 아니하고 아무리 걸어도 지치지 아니하리라. (이사 40:28, 31)”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또한 시편저자 역시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상처입은 마음을 고치시고, 터진 상처를 싸매 주시는 분, 별들의 수효를 헤아리시고 낱낱이 이름을 붙여 주시는 분, 전능하신 우리의 주님 얼마나 크시냐. 그의 슬기 형용할 길이 없어라. (시편 147: 3-5)”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기도를 통해 성부 하느님과 하나되신 예수님은 “갈릴래아 지방을 두루 찾아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며 마귀를 쫓아내셨습니다. (마르 1: 39)” 그리고 사도 바울은 예수님과 극적으로 만나서 회심을 하고 깊은 영적체험을 통해서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 위하여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을 이어받은 영국의 선교사들은 이 강화 땅에 한국인들의 문화 한 가운데로 들어와서 한옥성당을 짓고 우리 문화 안에 복음을 구현했습니다. 기독교의 역사 특별히 선교역사는 복음을 모든 이에게 전하기 위하여 모든 것이 되고자 힘써 온 발자취입니다. 그리고 그 힘은 바로 기도입니다. 성자 예수님이 성부 하느님과 기도하시면서 그 힘으로 전도하시고 마귀를 몰아내셨고,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와 기도를 통해 복음을 유다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전했고, 영국의 선교사들이 바다 건너 머나먼 조선에 와서 우리 문화와 만나는 실로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 구현한 것도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이제 예수님과 사도 바울과 영국의 선교사들이 우리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주님과 만나기 위하여 기도하십니까? 여러분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고자 노력하십니까? 그리하여 여러분은 자유와 해방과 구원을 맛보고 계십니까?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신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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