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중보기도는 나와 너를 살린다(2024년 세계기도일 예배 설교문)
작성일 : 2024-03-09       클릭 : 48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40309 세계기도일 예배(성공회 강화읍교회)

에베소서 4:1-7 / 요한 15:12-13, 17

 

중보기도는 나와 너를 살린다

 

 

교회에는 아름다운 전통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중보기도 혹은 대도(代禱)라고 부르는 intercession prayer는 초대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교회가 소중하게 바치고 있는 아름다운 영적 전통입니다. ‘중보기도’란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주님께 기도하는 건데 사적으로 하기도 하고, 공적으로 하기도 합니다. 저희 성공회의 경우, 매 주일예배 때 ‘교회와 세상을 위한 기도’라는 이름으로 중보기도를 합니다. 아마도 감리교를 비롯하여 다른 형제자매 교회에서도 명칭은 다르게 부르지만, 이러한 중보기도를 하고 계실 것입니다.

137년 전, 한 여성의 중보기도로 시작하여 현재는 전 세계 180여 개국 교회여성들이 매년 3월 첫째 주 금요일 함께 모여 세계평화와 화해를 위해 기도해 온 ‘세계 기도일 예배’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초 교파 여성 기도 운동입니다. 우리나라 교회는 일찍이 1922년부터 이 기도운동에 동참하였습니다. 그 당시 엄혹한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우리 여성선조들은 우리민족의 독립과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해 왔습니다. 일제는 이러한 우리들의 기도에 대하여 모진 탄압을 해서 때로는 몰래 숨어 기도할 수밖에 없는 고난의 시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기도의 끈을 잃지 않고 이어왔다는 것은 한국 기독교 여성들의 영적인 저력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전세계적이고 전국적인 초 교파 여성성도분들의 중보기도 물결에 강화에 있는 기독여성들도 함께 하게 되어 주님께서도 매우 기뻐하시고 크나큰 축복을 내리실 것입니다.   

세계기도일은 매년 각 나라 기독여성들이 돌아가면서 주제와 예배문을 작성하는데, 올해는 특별히 팔레스타인 교회여성들이 에베소서 4장 1~7절의 말씀인 “내가 너희에게 권하 노니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라는 주제로 예배문을 작성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수난을 앞두고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 하신 당부인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 15:12)”는 말씀도 함께 채택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팔레스타인 여성성도분들이 보내온 이 예배문은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작성된 것입니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오랫동안 그 지역에 살아왔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쫓겨나므로 인해 갈등이 고조되어 있지만, 반면에 그러면 그럴수록 진실한 신앙인들은 그들이 유대교를 믿던 기독교를 믿던 심지어 이슬람교를 믿던 각자가 고백하는 신앙의 진리와 정반대되기에 진실로 화해와 용서, 사랑의 모습이 회복되길 열망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의 바램과는 달리, 현재 전쟁으로 인해 많은 사상자가 생기고 있는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는 말할 것도 없고, 이스라엘에서도 무고한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어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전체 사망자 중에서 어린이가 절반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성공회의 경우를 말씀드리자면, 이 지역이 성공회 예루살렘 교구 관할 지역인데, 작년 10월 17일 성공회 예루살렘 교구에서 운영하는 알 알리 병원이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병원건물과 의료장비가 파괴되었으며, 의료진과 환자들이 큰 부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알 알리 병원은 가자 지구에서 가장 큰 병원 중 하나로서 이번 공격으로 인해 생명을 살리는 인도적 활동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처럼 증오에 찬 양측의 보복전에 대하여 작년 10월 18일 세계성공회를 대표하여 저스틴 웰비(Justin Welby) 캔터베리 대주교는 무고하게 희생당하고 있는 이들을 애도하면서 잔혹하고 광기에 찬 전쟁을 조속히 중단하고 정의와 평화를 위해 기도하길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은 해를 넘겨서 아직도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이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쟁 전에 팔레스타인 기독여성들이 보내온 이 예배문을 가지고 올해 전세계 자매들이 중보기도를 하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뭔가를 암시하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께서 동네로 들어 오시자 “침상에 누워 있는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네 죄는 용서받았다(Take heart, my son; your sin are forgiven)’하고 말씀하셨다 (마태 9장2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우리가 하는 중보기도의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씀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의 장면을 보면, 중풍병자는 혼자 힘으로 도저히 예수님께 다가갈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런 딱한 모습에 주변사람들은 그 사람의 처지와 그 아픔에 깊이 공감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힘을 합하여 그 사람을 메고 사람들을 헤치고 예수님 앞에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용기를 내어라. 네 죄는 용서받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용기를 내어라’를 ‘안심하여라’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그 의미는 중풍병으로 위축되고 불안한 그 사람의 마음을 예수께서 안심시켜 주시고 다시 삶을 살아갈 용기를 북돋아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중보기도의 효과는 고통받고 있는 당사자를 다시 살립니다. 동시에 이것 못지않게 중요한 효과는 중보기도를 하는 사람도 변화시킵니다. 저는 중풍병자를 예수께 데려온 그 사람들도 예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중풍병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실천하고, 마침내 놀라운 기적을 가까이서 목격함으로써 주님의 은혜를 함께 받은 것입니다. 

친애하는 성도 여러분!

중보기도는 내가 타인을 위해서 주님께 기도하는 이타적이고 숭고한 영적 행위입니다. 주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내가 대신하여 기도하는 그 사람뿐만 아니라 기도하고 있는 나에게도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그러므로 중보기도는 타인 뿐만 아니라 나를 위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세상은 치열한 경쟁 사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점점 타인을 돌아볼 공감능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와 저 멀리 떨어진 언어도 다르고, 문화와 민족도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더 실감이 가질 않을 것입니다. 비록 뉴스에서 비참한 모습이 잠깐 보이긴 하지만, 우리는 그때만 잠시 “안됐군!”할 뿐, 뉴스가 끝나면 다시 내 신변 일에만 신경 씁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시간을 내서 함께 모여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 있는 사람과 일들을 넘어서 이 세상 어딘가 통곡하며 울부짖는 이들을 상상하며, 그 아픔에 공감하고, 주님께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 한다는 것은 우리도 언제 닥칠지 모를 위험에 빠질 때, 나는 모르지만 어딘 가에서 나를 위해서 중보기도 하는 형제자매들과 깊은 영적 연대의 끈을 맺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가 됩니다. 

교회 달력에 따라서 머지않아 우리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립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십자가에 희생하기 전에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큰 일을 앞두시고 우리에게 남기신 중요한 유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를 돌아볼 때, 부끄럽게도 우리는 우리 주님의 이 당부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갈라지고 서로를 오해하고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사도 바울께서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하신 ‘오래 참고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라’는 말씀을 명심하고 실천했더라면, 우리 교회는 이렇게까지 반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 세계평화일을 맞아 지구촌 저 멀리서 고통받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바치는 지금, 이 땅의 기독교회들도 서로를 존중하고 협력하며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함께 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설교를 마치며 주님께 기도합니다.

사랑이신 주님!

우리를 사랑하사,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사랑하신 당신의 사랑에 감사합니다. 여기 모인 이들이 당신의 그 마음, 당신의 그 사랑을 닮을 수 있게 하소서. 그리하여 당신을 닮은 그 마음으로 저 멀리 떨어진 중동 땅에서 중풍병자처럼 무기력하게 쓰러져 있는 형제자매들의 좌절과 불안을 함께 아파하고, 당신께 간절히 기도하게 하소서. 당신께 간구합니다: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소서. 

그들이 더 이상 불안에 떨지 않도록 안심시켜 주소서.

그들이 더 이상 좌절하지 않고 평화를 찾을 수 있게 지혜와 용기를 주소서.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누릴 평화가 우리의 기쁨과 평화가 되게 하소서.

사랑과 평화이신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 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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