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당신의 이름이 거룩하게 하시며(나해 사순5주일)
작성일 : 2024-03-16       클릭 : 38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40317 나해 사순5주일

예레 31:31-34 / 히브 5:5-10 / 요한 12:20-33

 

 

당신의 이름이 거룩하게 하시며

 

주의기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기도 중에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의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도의 앞부분은 하느님에 대한 기도입니다. 공동번역 성경에 기반하여 대한 성공회는 이것을 온 세상이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받들게 하시며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기도문은 영어와 라틴어 기도문과 대조해보면 그 의미가 좀 명확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영국 성공회에서 사용하는 주의기도문은 “hallowed be your name”이고, 서양언어의 근간인 라틴어 주의기도문은 “sanctificetur Nomen Tuum” 입니다. 영어와 라틴어 기도 모두 하느님의 거룩함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천주교 기도문,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혹은 개신교 기도문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며가 좀 더 정확한 번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설교 서두에서 이 부분을 이렇게 장황하게 비교해서 말씀드리는 이유는 주의 기도 앞부분에 드리는 이 기도문이 주의 기도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어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우리가 이 부분을 기도할 때마다 바로 이것이 우리 삶의 원리와 기초라는 점을 깨닫길 바라셨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께서는 삶으로써 당신이 가르쳐 주신 주의기도 정신을 실현시키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명절 때 예배 드리러 예루살렘에 온 사람들 중에 그리스 사람들이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를 뵙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오늘날처럼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옛날에도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라는 속담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은 저 멀리까지 퍼져갔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온갖 기적을 행하시며, 그 가르침이 비범하다는 소문에 비단 유다인 뿐만 아니라 유대교를 믿는 이민족 사람들도 그런 분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그리스인들이 살았던 데카폴리스 근방에 살아서 그리스인들에 대한 이해가 있던 제자 안드레아와 필립보가 그들의 부탁을 예수께 전하자, 예수께서는 씨앗이 죽어야 열매를 맺는다는 자연의 이치를 들어 당신의 미래를 암시하십니다. 그리고 그 길로 그들을 초대하십니다. 바로 그것이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요한복음 저자는 이 일을 전하면서 마지막을 이렇게 맺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당신이 어떻게 돌아가시리라는 것을 암시하신 말씀이었다. (요한 12:33)

성서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요한복음은 기원후 90년에서 100년경 집필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연구에 근거해서 볼 때,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부활사건을 경험한 요한복음 저자는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오랜 시간 기도와 사색을 통해 반추하고 또 반추하면서 그 사건의 의미를 성찰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당시 그렇게 말씀하실 때 제자들과 추종자들은 그 깊은 의미를 모른 채 스승께서 웬 수수께끼 같은 말씀을 하시나하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승에게 일어난 일련의 일들을 목격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들의 인생이 깊이 변화됨으로 인해 비로소 그 참 뜻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부활이 영광임을 이해할 수 있지만, 십자가가 영광임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물며 교회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사건과 신학적 진술을 배운 후대인들도 깨닫기 어려운데,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기 전 제자들과 추종자들에게 이 말씀은 얼마나 이해하기 어려웠을까요?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께서는 당신이 높이 들리게 되는 십자가가 실은 자신에게 얼마나 무시무시한 고통이 될지 알기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깊은 고뇌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주의기도에서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기도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유혹이란 나의 욕심, 욕정, 욕망으로 인해 시달리는 거라면, 예수님이 받으시는 유혹이란 악()과의 영적전쟁이 소용돌이 치는 한 가운데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찍이 예수께서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며 기도하실 때, 마귀가 나타나 시험했던 그 집요한 유혹을 이제 십자가 사건을 목전에 두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배신하라고 하는 근원적인 유혹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혼에게 속삭이는 이러한 유혹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나는 바로 이 고난의 시간을 겪으러 온 것이다. 아버지,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소서 (요한 12:27-28)라고 그 유혹을 이겨 내십니다. 그러자, “내가 이미 내 영광을 드러냈고 앞으로도 드러내리라(요한 12: 28)라는 음성이 하늘에서 들려왔습니다. 이 광경은 예수께서 요르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에 의해 세례 받으셨을 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마르1:11)라는 장면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런데 이 두가지 계시는 모두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요르단 강에서 예수님의 세례 때 일어난 계시는 바로 광야에서 40일간 고행으로 이어졌고,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을 때 일어난 계시는 곧 이어 십자가 고난으로 이어집니다. 또한 이 두 계시사건 모두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영광스럽고 거룩하게 하시려는 예수님의 기도에 성부 하느님이 응답하신 것입니다. 이리하여 당신의 이름이 거룩하게 하소서라는 주의기도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제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과 우리들에게 그 기도를 정성스럽게 바치라고 하십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제2독서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께서는 인간으로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해 주실 수 있는 분에게 큰소리와 눈물로 기도하고 간구하셨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마음을 보시고 그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셨지만 고난을 겪음으로써 복종하는 것을 배우셨습니다 (히브 5:7-8)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십자가 신비의 한 단면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선적으로 하느님의 연민과 자애가 극적으로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연약하고 그러기에 유혹에 쉽게 굴복하는 우리 인간의 아픔과 고통을 하늘이라는 저 초월세계에서 듣기만 하지 않고, 친히 인간이 되셔서 그 아픔을 겪고 고통을 당함으로써 우리와 하나가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치욕의 십자가는 하느님의 연민과 사랑으로 구원의 도구로 변화되었습니다.  

동시에 하느님이 개입하신 십자가는 이제 더이상 고통에 무기력하게 끌려 다니는 절망의 상징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비하시고 전능하신 하느님은 부활로써 아들 예수님을 살려낸 것처럼 우리도 살려 내실 거라는 약속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새로운 계약입니다. 이 새로운 계약은 오늘 제1독서 예레미아 예언자가 소망했던 “새 계약(예레 31:31)인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기도를 할 때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라고 간구하는 것은 바로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온갖 유혹으로부터 아들 예수를 지켜 주셨고, 세상의 악에 의해 처참하게 십자가 형으로 죽어서 패한 것처럼 보이는 그러한 최악의 상황에서도 예수의 부활을 통해서 승리하게 하셨듯이, 당신을 믿는 우리도 그런 유혹에서 지켜 주시고, 악이 판치는 이 세상에서 우리를 구하셔서 마침내 당신의 나라로 불러 그 거룩함을 함께 누리게 해 달라는 염원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한 주 후면, 우리는 성지주일을 시작으로 해서 예수님 생애의 가장 극적인 한 주간, 고난주간(Passion Week)을 기념합니다. 그리스도교 신비의 핵심이 담긴 이 주간을 함께 하면서 하느님의 신비를 보다 더 깊이 깨닫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에게 주의 기도를 선물로 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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