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진화의 최종적 단계: 부활(나해 부활밤)
작성일 : 2024-03-30       클릭 : 36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0240330 나해 부활밤

창세 1:1-2:4 / 출애 14:1-31, 15:20-21 / 에제 37:1-14 / 로마 6:3-11 / 마르 16:1-8

 

진화의 최종적 단계: 부활

 

 

오늘 우리는 부활초로부터 빛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부활초 앞에서 부활찬송을 불렀습니다. 또한 평소와는 다르게 구약성경을 세 개나 읽었습니다. 원래는 구약성경을 7개 읽어야 하는데, 세 개만 읽은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밤 예식도 원래는 해가 완전히 진 어두운 밤에 합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처지를 고려해서 시간도 좀 앞당기고, 구약독서도 좀 줄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자리를 빌려 오늘 우리가 한 전례의 의미를 간단하게나마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전례에서 어둠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현실을 상징합니다. 캄캄하면 캄캄할 수록 우리는 이 현실을 더 분명히 자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어둠 한 가운데서 한 빛을 밝힙니다. 그리고 거기로부터 우리는 불을 받습니다. 그것은 부활한 예수로부터 받은 우리의 희망과 새 생명을 상징합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세상의 창조에서부터 시작해서 이 빛이 어떻게 지상을 다시 밝혔는지 장구한 역사를 듣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의 부활이 시간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왔으며, 공간적으로 어떻게 퍼져 나가고 있는지를 감각적인 상징행위를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저는 오늘 부활밤 설교를 준비하기 위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묵상할 때, 제 생각에 큰 영향을 준 한 분이 떠올랐습니다. 그 분은 예수회원이자 고생물학을 전공하신 프랑스의 대표적인 사상가 피에르 떼이야르 드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 1881~1955)신부님입니다. 샤르댕 신부님은 1923년 중국 북경에서 인류 화석인 북경원인(北京原人)’을 발견하는 등 고고인류학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저에게 인상적인 것은 과학과 신학이 서로 화합할 수 없는 그 당시 적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과학과 신학이 서로 대화하고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독창적인 그리스도론을 제시한 탁월한 사상가였기 때문입니다. 비록 생전에는 신부님의 이런 생각이 교회당국으로부터 받아들이지 못해서 말년에 고독한 가운데서 돌아가셨지만, 신부님의 사후, 그의 사상은 오늘날 과학시대 속에서 교회가 고립되지 않고 과학과 대화하며 하느님의 존재를 찾을 수 있는 중요한 방향을 제시한 위대한 사상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캄캄한 어둔 밤, 부활초에 한줄기 빛을 밝힐 때, 당시 무지몽매했던 교회에 한줄기 이성(理性)의 빛을 건네준 샤르댕 신부도 함께 기억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는 오늘 밤 예수 부활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부활은 새로운 창조 사건입니다. 오늘 첫번째로 읽은 창세기 11절은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 내셨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창조에 대한 해설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셨다는 선언입니다. 이 선언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온 세상의 교회가 다 고백하는 믿음입니다. 우리 한옥성당 정면에 있는 주련(柱聯)에도시작도 끝도 없는 중에 형태와 소리를 먼저 지으신 참 주재자(無始無終先作形聲眞主宰)”라고 이 믿음을 아름다운 한시(漢詩)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믿는 신은 창조주 하느님입니다. 그리고 이 하느님이 태초, 즉 모든 물질의 근본이자 으뜸이 되는 창조행위를 시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작은 모든 것이 뒤섞여 있는 깊은 어둠으로 묘사된혼돈(chaos)’을 뚫고 “빛이 생겨라”라고 하시자 우주의질서(cosmos)’가 창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세상만물이 차례로 형성되어 갔습니다. 창세기는 이러한 과정을 한편의 거대한 서사시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학적 서술을 오늘날 과학은 치열한 연구를 통해 우주와 생물이 장구한 역사를 거쳐서 진화해 왔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에서 유()가 생겨나고, 그 유는 단세포에서부터 출발해서 우리 인간과 같은 복잡한 지능을 가진 존재로까지 발전해 왔습니다. 실로 경이롭고 불가사이한 창조와 진화의 신비입니다. 떼이야르 샤르댕 신부님은 1938년에 쓴 《인간현상(Le Phénomène Humain)》이란 책에서 인간은 우주진화의 산물인데, 그 이유는 진화란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무의식적 존재에서 의식적 존재를 향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진화의 최종적인 목표가 아니라고 합니다. 마지막 남은 최종점, 샤르댕 신부님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오메가 포인트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과 신이 완전히 결합된 상태를 지칭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바로 오메가 포인트입니다. 그것은 창세기 1 1절에서 시작한 창조와 진화가 도달한 최종점입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물질이 영화(spiritualization)’되는 것, 다시 말해, 더 이상 시간이 지나면 부패해서 소멸되는 것이 아니며 공간에 제약을 받는 것도 아닌 무시무종(無始無終)하신 하느님과 온전히 상통하는 경지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활은 새로운 창조인 것입니다.   

다음으로 부활은 해방의 사건입니다. 오늘 두번째로 읽은 출애굽기는 히브리백성이 홍해바다를 극적으로 건너간 이야기입니다. 앞에는 검은 바다가 물결치고 있고, 뒤로는 파라오의 군대가 기세 등등하게 쫓아오고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모세는 주님의 명을 따라 팔을 높이 듭니다. 그러자 바다가 갈라지고, 백성들은 그 사이를 걸어 빠져나갑니다. 그렇지만, 뒤쫓아온 파라오의 군대는 바다가 다시 원래모습으로 돌아 감으로 인해 모두 수장되고 맙니다. 이에 히브리 여인들은 “야훼를 찬양하여라. 그지없이 높으신 분, 기마와 기병을 바다에 처넣으셨다 (출애 15:16)라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당시 중동에서 최강을 자랑하던 이집트 군대가 자연의 힘 앞에 맥없이 휩쓸려 나간 이 광경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리하여 그들은 훗날 어떠한 시련과 역경이 와도 해방자 하느님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약시대 하느님 백성의 모임인 교회는 이러한 하느님을 이제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체험합니다. 이스라엘을 백성을 노예에서 자유인으로 건너가게(pass over)’하신 구약의 하느님이 이제 신약시대에 와서 하느님 백성을 죽음에서 참 생명으로 건너가게(pass over)’하십니다. 그래서 구약의 백성이 과월절(Passover)’로 이 날을 기념하듯이,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절(Easter)’로서 이 날을 기념합니다.

마지막으로 부활은 기적의 사건입니다. 오늘 세번째로 들은 에제키엘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 사람아, 이 뼈들은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다. 뼈는 마르고, 희망은 사라져 끝장이 났다고 넋두리하던 것들이다. (에제37:11)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실로 모든 가능성이 없어진 절망의 모습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숨을 불어넣으시자, 뼈들에 살이 붙고 다시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언자 에제키엘이 본 환시가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에게서 일어났습니다. 실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물질적 기적만이 아닙니다. 이 죽음이 가져온 절망과 모든 상실을 일거에 뒤집은 기적입니다. 예수의 기적으로 이제 죽음을 넘어 생명으로 가는 길이 열리고, 절망이 희망으로 변해서 생동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참으로 기적 중의 기적인 것입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샤르댕 신부님은 1955년 임종하기 직전에 쓰신 《신의 영역(Le Milieu Divin)》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십니다: “신의 사랑으로 우리도 신 안에 들어가고, 그의 사람으로 일체를 이룰 때 우리는 없어진다. 그러나 그 때 우리는 참으로 신의 영역으로 몰입하게 된다.” 그가 언급한 신의 영역이란 바로 우리가 있어야 할 곳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바로 이 모든 것을 유기적으로 맺어 주시는 분입니다.

비록 그 당시 샤르댕 신부님의 그 신비한 직관과 탁월한 예지를 알아주지 못해서 그분의 육신은 어둔 밤과 같은 나날 속에서 돌아가셨지만, 그 분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 교회와 이 세상 사람들에게 한 줄기 새로운 빛으로 생생히 살아있습니다.

부활 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어둠의 현실이 여전히 있지만 우리는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고백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이미 신의 영역으로 초대받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부활한 예수를 따라 새로운 창조, 해방의 사건, 그리고 진정한 기적을 맞이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믿고 고백하는 신앙의 신비입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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