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20250629 성령과 함께(다해 연중13주일)
작성일 : 2025-06-29       클릭 : 7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0250629 다해 연중13주일

열왕하 2:1-2, 6-15 / 갈라 5:1, 13-25 / 루가 9:51-62

 

성령과 함께

 

예수님 시대 이스라엘 땅은 지리적으로 크게 세 개 지역으로 구별됩니다. 제일 남쪽 예루살렘이 있는 지방은 유다라고 하는데, 그 이름은 솔로몬 왕 사후 왕국이 분열되었을 때, 유다 왕국이라 불렀던 것에서 유래됩니다. 그리고 중부지방을 사마리아라고 불렀는데, 그곳은 왕국이 분열되었을 때, 이스라엘왕국이라고 불렀던 곳입니다. 이처럼 한 민족이 두 나라로 분단되는 바람에,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유대인들과 사마리아들 간에는 예수님 시대에서도 여전히 앙금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지역을 지나 제일 북쪽 갈릴리 호수가 있는 곳을 갈릴래아라고 불렀는데, 이곳은 역사적인 앙금은 없었지만, 워낙 변두리 지역이다 보니 갈릴리 지방 말인 아람어를 사용하였고, 히브리어를 할 줄 알아도 억양이 이상해서 유다사람들한테 촌놈 취급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바로 갈릴리 출신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유대교의 규정에 따라 매년 예루살렘 성전으로 예배 드리러 갔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남쪽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향하여 북쪽에 있는 갈릴래아를 떠나서 중부지역인 사마리아 지방을 통과할 때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은 처음에는 예수님 일행을 잘 맞으려고 했다가,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간다는 말을 듣고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여 냉담하게 대합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화가 났고, 그 중에서도 다혈질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저들에게 벌을 주라고 요구합니다. 마르코 복음 3 17절을 보면, 야고보와 요한의 성격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예수께서 그들을 보아네르게스(Boanerges),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실 정도였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요구에 예수께서는 그들을 꾸짖고 나서 다른 마을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우리가 이 이야기의 역사적 배경을 모른다면, 아마도 우리는 예수님 일행을 냉대한 사마리아인들이 참 야박한 것이 아닌가,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명색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늘에서 불을 내려 다 태워 죽이라는 그런 험악한 말을 내뱉을 수 있단 말인가라고 생각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간에 형성된 역사적 배경을 안다면, 우리는 이들의 행동을 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 사이의 미움의 기원은 예수님 시대로부터 약 1000년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기원전 931년 솔로몬왕이 죽고, 그 아들 르호보암왕이 즉위하자, 북쪽 지파사람들이 솔로몬왕이 다른 나라 여인들과 정략결혼으로 말미암아 생긴 우상숭배 문제, 그리고 과도한 세금징수로 인한 민생고(民生苦) 등을 지적하며 시정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르호보암 왕은 백성의 소리를 경청하지 않고, 더 권위적으로 억압했습니다. 이에 반발한 북쪽 지파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서 따로 나라를 세웠는데 그것이 이스라엘 왕국입니다. 그들은 유다 왕국이 우상숭배에 빠져서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혔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그리짐산(Mount Gerizim)에 성전을 세우고, 솔로몬왕이 세운 예루살렘 성전의 종교적 정통성을 부정했습니다. 이처럼 정치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분열된 그들은 기원전 722년 북 이스라엘 왕국이 앗시리아왕국에 의해 멸망당하고, 기원전 586년 남 유다 왕국은 바빌론 왕국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그러나 두 왕국이 멸망당했을 때, 앗시리아왕국은 이방민족을 사마리아 지역으로 이주시켜 혼혈화시키는 바람에, 북쪽의 이스라엘 지파는 혈통적으로 단일민족이 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반해 유다 왕국 사람들은 비록 바빌론으로 강제 유배를 당했지만, 이방민족과 섞이지 않아서 유다 혈통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남쪽 유다 사람들은 북쪽 사마리아 사람들을 혼혈인이라고 배척하였고, 급기야 기원전 200년 경 유다의 왕 요한 히르카누스(John Hyrcanus)는 사마리아인들의 종교적 구심점인 그리짐산에 있는 성전을 파괴함으로써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간에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처럼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 간의 역사적 원한관계를 이해한다면, 우리는 왜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토록 냉담한 태도를 보였는지,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왜 그토록 싫어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과 인간을 화해시키려 오신 예수님에게 있어서 그러한 역사적 원한관계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당신의 사명이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사마리아인들은 사회적 약자였기에, 그들과 똑같이 대응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한()을 말없이 가슴에 담으시고 당신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에 이어서 예수께서는 당신을 따르려는 사람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아마도 루가 복음 저자는 예수님 시대 지역적으로 소외받고 차별받고 있는 사마리아에서 벌어졌던 이 이야기를 통해서 제자들이 갖고 있던 편견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후,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기 위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은 예수님처럼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전하는 것은 어떤 정치이념이나 물질이 아닌 하느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전하려는 이 하느님 나라는 유다 왕국과 이스라엘 왕국으로 분단된 민족의 분열을 극복하고,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으로 갈라진 종교적이고 민족적인 갈등이 치유되는, 그래서 하느님 안에서 다양하고 조화로운 형제자매 공동체인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울은 세상의 나라 가치와 하느님 나라 가치를 극명하게 대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나라의 가치를 육체의 욕망을 채우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것은 음행, 추행, 방탕, 우상숭배, 마술, 원수 맺는 것, 싸움, 시기, 분노, 이기심, 분열, 당파심, 질투, 술주정,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런 짓을 일삼는 자들은 결코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반면에 하느님 나라 가치는 성령이 맺어주시는 열매라고 하면서 그것은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를 위해 불림 받은 제자들이 가져야 할 덕목입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교회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공동체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 공동체는 구약성경에서도 보여집니다. 대표적인 예가 오늘 1독서에서 들은 엘리야와 엘리사를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입니다. 공동번역성경에는 예언자 수련생이라고 하고 있는데, 영어성경에는 ‘Sons of prophets(선지자의 아들들)’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실제 혈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의 권위 아래 훈련받는 제자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들은 하느님의 계시를 듣고 전달하는 예언자의 역할뿐만 아니라 기도와 찬양 등의 영적훈련을 포함한 예배활동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마치 오늘날 수도원이나 신학교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눈 여겨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약의 선지자 아들들도 그렇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렇고, 사도 바울이 활동했던 초대교회도 그렇고 그 안에 들어 있는 가장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요소는 바로 ()’입니다. 다시 말해서 거기에는 하느님의 영, 예수 그리스도의 영,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과 일치하는 영, 성령이 움직이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영이 스승 엘리야에서 제자 엘리사에게 내렸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사도들에게로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 성령이 이제 여기 이 자리에 있는 우리교회에게도 내려오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오소서, 성령이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마치 오늘 1독서에서 엘리사 예언자가 엘리야의 하느님 야훼여, 어디 계십니까?”(열왕하 2:14)라고 외치며 기도했듯이 말입니다. 그럴 때 하느님의 영이 엘리야의 겉옷을 통해 당신의 존재를 드러내신 것처럼, 우리를 통해 당신의 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 교회는 지난주일부터 알파코스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8 8일부터 10일까지 성령과 함께라는 주제로 전교인 수련회를 가질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필름을 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예배 드리고, 함께 먹고 쉬면서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느끼고, 그 안에서 새로운 활력을 찾을 것입니다.

모쪼록 올 여름 성령과 함께 우리 모두가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맛보는 기쁨이 되길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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