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20251012 성직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성소주일)
작성일 : 2025-10-12       클릭 : 22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0251012 성소주일

1사무 3:1-11 / 에페 4:4-7, 11-16 / 요한 21:15-19

 

 

성직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남녀가 만나서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 기쁨과 동시에 큰 책임감이 생깁니다. 그래서 부모는 이 아이가 잘 자라서 성인(成人)이 되어 독립적이고 행복하게 인생을 잘 살아가도록 물심양면으로 노력합니다. 이것은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갖고 있는 본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생물체뿐만 아니라 사회와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속 가능한 조직이 되기 위해서 조직은 자신의 정신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발전시켜 줄 인재를 선발하고 양성합니다. 그중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는 예수께서 공생활 시작부터 당신과 함께할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길러내신 모범을 따라 지금까지 주님의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발굴하고 양성하고 파견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일꾼을 키우는 일은 교회의 핵심 사명 중 하나입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초창기 박해 시대에는 사도들이나 교회공동체에서 사도들과 신앙인들을 따라다니며 그들의 신앙과 활동을 직접 배우고 익히면서 양성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성직자 양성을 위한 학교가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사도들의 계승자인 주교는 성직자 양성에 대한 각별한 책임을 졌습니다. 그래서 주교좌 성당에 사제 학교를 세워서 양성했는데 이를 스콜라(Schola)’라고 불렀습니다. 영어 school의 어원이 이 말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동시에 복음 정신을 보다 철저히 실천하기 위해 생겨난 수도원들도 수도자와 성직자 양성을 위해 각별한 노력을 하였습니다. 특별히, 기도와 공동체 생활을 중요시하는 수도원의 특성은 자연스럽게 성직자 양성의 기본 정신에 녹아들어 가게 되었고, 기독교 성직자 교육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

조선에 온 영국 선교사들이 한인(韓人) 성직자 양성을 위해 강화읍교회 부지에 설립한 교육과 훈련공동체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1914430일에 이 건물 소성당 제대에서 성 미가엘(St. Michael)’의 도우심을 청하면서 개교 미사를 거행하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신학교 성 미가엘 소성당을 후대 사람들은 성 미가엘 신학원혹은 미가엘 천사가 천사들 중 으뜸이란 뜻으로 천신(天神)이라고 칭한 것에 착안해서 천신신학교라고 부르다가, 오늘날에는 성공회대학교(Sungkonghoe University)’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래 이름은 강화수도원(Ganghwa Training College)’입니다. 그러면 영국 선교사들이 이곳을 신학원 혹은 신학교라고 하지 않고, 왜 수도원이라고 하였을까요? 그것은 3대 교구장이었던 마크 트롤로프(Mark Trollope) 주교께서 성직자 양성은 단지 서적으로만 공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목에 필요한 실제적 경험을 체득하는 것도 중요시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영국 선교사들은 기도와 예배, 공부와 노동을 통하여 신학생들에게 지적, 영적, 사목적 양성이라는 균형 있는 훈련이 이루어지길 꿈꿨던 것입니다. 이것은 기도하며 일하라(Ora et Labora)’라는 그리스도교 수도원 영성 전통을 계승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성직자 양성에 대한 교회의 목표는 대한성공회 성직자 양성에도 필히 있어야 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대한성공회 성직자 양성의 위기와 그 돌파구 마련을 고민할 때, 우리는 복음과 교회 전통이 했던 핵심 가치를 결코 도외시하면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학이 시대정신을 민감하게 감지하고 그에 조응하는 고등교육기관으로 사명을 수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직자 양성은 시대의 흐름에 응답하기에 앞서서 근본적으로 예수님의 거룩한 부르심에 응답하고, 기도와 공부를 통해 그 진리를 연마하는 것을 결코 소홀히 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성직자는 이 시대와 함께 호흡해 가면서도, 이 시대에 초월의 가치를 증언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주님의 몸 된 교회와 그 교회의 지체인 신학교에서 익혀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신학교가 일반 세속대학과 구별되는 점입니다.

그러면 성직자는 어떻게 만들어집니까?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 한번 성찰해 봅시다.

우선, 성소자는 예수님을 정말로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하느냐?” (요한 21:16)고 세 번씩이나 물으십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 장면은 예수님이 베드로를 처음 부르실 때 장면이 아닙니다. 처음 그를 부르실 때는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이제부터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 (루가 5:10)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비범한 존재이신 예수님에 대한 베드로의 두려움을 예수께서 안심시키고 당신과 함께 하자는 초대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시고 베드로와 다시 만나셨을 때 예수님은 그의 마음, 그의 내면을 향하여 물으십니다. 사랑하냐고 말입니다. 사실, 베드로는 그 어느 제자보다 앞장서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다가 배반이라는 치명적인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에 대하여 엄청난 충격과 낙담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바로 그 지점에서 베드로의 마음에 오십니다. 그리고 그를 다시 한번 부르십니다. 어쩌면 성직자 그리고 거룩한 직무에 헌신하려고 하는 사람의 삶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하고 그 길에 따라나섰지만,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실망하고 낙담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랑하느냐?”하는 그 질문에 도전과 위안을 받고 다시 허리띠를 동이고 일어나는 사람입니다.

다음으로 성소자는 교회와 하나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과 교회와의 관계를 신랑(新郞)과 신부(新婦)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을 바쳐서 교회를 사랑하셨고, 교회는 그러한 그리스도에 대하여 순종한 것처럼, 성직자는 그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직자는 교회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성직자는 그리스도와 결혼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성소자는 그리스도와 결혼으로 결합하기 위하여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 사도바울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사랑 가운데서 진리대로 살면서 여러 면에서 자라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에페 4:15)

마지막으로 성소자는 부르심에 응답하는 과정 중에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견습생인 어린 사무엘이 부르심에 응답하는 과정 이야기가 나옵니다. 야훼 하느님께서 세 번이나 소년 사무엘을 부르십니다. 그때마다 사무엘은 엘리 스승이 부르는 줄 알고 스승께 갔습니다. 아직 그는 그것이 하느님의 부르심인지 분별할 수 있는 수준이 못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스승은 반복되는 현상이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메시지라는 알아차리고 어린 사무엘에게 야훼여, 말씀하십시오.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 3:9)라고 대답하라고 일러줍니다. 사무엘은 스승의 말씀대로 했고, 마침내 하느님의 계시를 듣습니다. 이 이야기는 성소자 양성에 있어서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줍니다. , 하느님의 뜻을 아는 것 그리고 영적인 것을 식별하는 것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달리 말해서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성직자 양성은 지적인 훈련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이성적으로 이해해야 하고, 영적인 훈련을 통해서 하느님의 계시를 영적으로 분별해야 하며, 사목적 훈련을 통해서 그것을 구현해 나가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견습생 사무엘이 엘리 사제를 통해서 주님의 예언자로 자라났듯이, 한 사람의 성소자가 주님의 교회에 헌신하는 성직자로 태어나기 위해선 엘리와 같은 훌륭한 스승들, 예언자 학교와 같은 훈련공동체, 그리고 사무엘을 향해 열심히 기도했던 어머니 한나와 같은 교회공동체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럴 때 주님 보시기에 기뻐하는 교회의 사람이 탄생합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날 교단을 막론하고 성소자 감소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이미 신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주님의 포도밭인 교회가 감당해야 할 선교와 사목 영역에서도 심각한 위기가 오고 있습니다. 서울교구만 하더라도, 60년대생이 43, 70년대생이 41명인데 반해, 80년대생이 13명으로 사제들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 상태로 가면 10년도 되지 않아서 심각한 사제 부족으로 교회와 교회가 감당하고 있고, 감당해야 할 선교영역을 접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성공회 대학교 안에 있는 성직자 양성시스템은 가르칠 사제들이 은퇴해서 지적이고 영적인 훈련 시스템이 이미 붕괴하기 일보직전입니다.

이런 교회의 모습에 대하여 어떤 분들은 어차피 인구도 줄고,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어서 전도도 되질 않아 미래에는 교회도 소멸에 준하는 작은 형태로 변할 수밖에 없으니, 성직자 정년 연장이니 성직 지망자 육성이니 굳이 해야 하냐고 소극적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교회 역사를 보면, 교회는 위기 앞에서 방향을 못 찾고, 그래서 때때로 어떤 지역에서는 교회가 사라질 때도 있었지만, 하느님의 섭리는 우리를 또 다른 새로운 길로 부르시고 이끌어 주셨습니다. 비록 교회가 그 부르심에 소년 사무엘처럼 그 소리를 하느님의 소리로 못 알아들었다 하더라도 주님은 계속해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중요한 것은 그 부르심이 단지 인간의 부르심이 아니라, 하느님의 부르심임을 영적으로 알아차리는 감각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것을 ‘sensus fidelium(신앙인들의 감각)’이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신앙을 지닌 하느님 백성이 성령의 인도 안에서 교회의 신앙 진리에 대해 가지는 직관적이고 공동체적인 감각이란 뜻입니다. 쉽게 말해서 믿는 자들이 공감하는 상식(常識)’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 구성원 모두가 기도하면서 하느님을 따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부르심과 비전을 하느님의 부르심과 비전으로 받아들여서 라고 응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예수님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비단 성직자와 성소 지망자에게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덧글쓰기  

광고성 글이나, 허위사실 유포, 비방글은 사전 동의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이전글 베드로 25-10-18 4
다음글 베드로 25-10-06 23


묵상 영성 전례 옮긴글들
이경래 신부 칼럼 김영호 박사 칼럼

홀리로드 커뮤니티

댓글 열전

안녕하세요?선교사님!
정읍시북부노인복지관 멸치 판매..
원주 나눔의집 설명절 선물세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