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20251123 고난, 기억, 그리고 감사(추수감사절 /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
작성일 : 2025-11-23       클릭 : 10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0251123 추수감사절 /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

신명 8:1-10 / 야고 1:17-18, 21-27 / 루가 23:33-43

 

고난, 기억, 그리고 감사

 

교회에는 여러가지 전통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통들은 각각 자신들만의 고유한 유래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두 전통을 동시에 기념합니다. 하나는 미국에서 유래된 전통이고, 다른 하나는 유럽에서 유래된 전통입니다.

먼저 미국에서 유래된 전통인 추수감사절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은 성공회 입장에서 볼 때, 약간 불편한 역사적 사실이 있습니다. 종교개혁 시기, 영국이 교황의 간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유럽대륙에서 핍박받던 개혁가들은 영국으로 가서 그들이 꿈꾸던 이상적인 신앙을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당시 영국 성공회 안에는 다양한 정치적, 종교적 스펙트럼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세계사 시간 때 들은 청교도(Puritan)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그들은 성공회가 시작한 개혁을 더 급진적으로 밀어붙이려고 했습니다. 그 주요 내용을 보면, 종교적으로는 주교제도를 폐지하여 모든 신자들이 평등한 교회로 만들길 원했고, 정치적으로는 왕정을 없애고 공화정을 실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영국 지배층들은 그들을 경계했고 갖은 견제를 했지만, 마침내 그들은 영국의회의 다수파를 차지하여서 1645년 윌리엄 로드(William Laud) 캔터베리 대주교 처형, 1649년 영국 왕 찰스1(Charles Ⅰ) 처형 등 영국사회와 교회를 급진적으로 바꿨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련의 사태에 충격을 받은 영국국민들의 저항으로 그들의 힘은 약화되었고, 결국 영국 땅에 발을 붙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1620년 메이플라워(Mayflower)호를 타고 미국으로 이주한 청교도들은 그러한 17세기 영국의 정치, 경제, 종교적 배경 속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들은 종교적 이상을 품고 신대륙으로 향했지만, 그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 중 농업이나 어업에 종사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굶주림과 병으로 절반이 죽는 등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다행히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도움으로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짓게 되어 이듬해인 1621년 가을, 첫 수확을 하고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그것이 미국의 첫 추수감사절입니다. 그 후, 영국에서 독립한 미국은 매년 11월 넷째 목요일을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로 공식 지정하였습니다. 한국의 경우, 미국교회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장로교와 감리교가 1914년부터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주일로 정했고, 대한성공회를 포함한 한국의 여러 개신교단들도 이 전통을 받아들여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유럽의 종교전통이자 기독교 전례전통으로 지켜오고 있는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Christ the King Sunday)’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1925년 교황 비오 11(Pius ⅩⅠ) 가 교회력으로 마지막 날을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로 제정하였습니다. 당시 유럽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1917년 소비에트 혁명, 무신론과 공산주의의 확산 등으로 인해 오랫동안 그리스도교 가치관으로 유지되어 온 유럽의 정신질서가 흔들리면서 혼란과 위기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는 세상을 향하여 불완전한 인간의 통치가 가져오는 비극을 극복하고 그리스도가 참으로 역사의 왕이심을 다시금 인식하길 호소하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교황의 호소에 성공회, 루터교를 비롯한 유럽의 개신교에서도 호응하였고, 그로부터 그리스도교 모든 교단은 대림시기 직전 주일을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한국의 교회도 그러한 유럽과 세계교회의 뜻에 동참하여 이 날을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추수감사절과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을 동시에 기념하는 오늘! 저는 두 개의 축일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오늘 예배에서 들은 성경말씀을 묵상하며 고난’, ‘기억’, ‘감사란 세 가지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럼, 이 축일들의 의미를 이 세가지 단어를 통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고난입니다. 특별히, 오늘 복음은 고난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난주일 그리고 성 금요일 마다 접하는 장면입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해골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해골산으로 부른 곳에 마침내 도착하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눕히고 양 손과 발에 못질을 합니다. 상상할 수도 없을 고통과 비명 속에서 예수님은 자신들이 저지르는 일이 뭔 지도 모르는 자들을 용서해 달라고 성부 하느님께 기도하십니다. 그러나 이런 예수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도자들, 군인들, 심지어 함께 매달린 죄수 마저도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그들은 당시 노동자들과 군인들이 애용했던 피로회복제인 신 포도주를 마시게 하여 생명을 더 연장시켜 더 많은 조롱과 고통을 주려고 합니다. 참으로 잔인한 인간의 악마적 행태가 적나라하게 보입니다. 이처럼 조롱이 계속되는 동안 군중들은 멀찍이 서서 무기력하게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단지 예수님의 친지들과 갈릴리에서부터 그분을 따라온 여인들만 비통해 할 뿐입니다.

사실 우리도 살다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기가 막힌 고난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이 닥쳤을 때, 평소에 나를 좋다고 하던 사람들은 안 보이고, 내 주변엔 온통 모함하고 조롱하고 배척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못질을 당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봅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이 아픔을 잘 아시는 그 분께 나의 아픔을 호소합니다. 그러면 주님의 아픔과 나의 아픔이 하나가 되면서 나의 아픔은 주님의 아픔으로 위로 받고 치유 받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주님처럼 그들을 용서해 달라는 내적인 힘이 생기기도 합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 믿는 이들 만이 누릴 수 있는 십자가의 은총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기억입니다. 오늘 1독서인 신명기는 모세가 죽기 직전 히브리 백성들에게 이집트에서 구해내신 야훼 하느님께서 광야에서의 훈련을 통하여 그들을 준비시킨 의미를 되새기게 해 준 책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명기는 오합지졸 노예에서 하느님 백성으로 변화된 집단적 기억에 대한 책입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너희는 지난 사십 년간 광야에서 너희 하느님께서 어떻게 너희를 인도해 주셨던가 더듬어 생각해 보아라.”(신명 8:2) 저는 모세의 이 말씀이 시대를 관통하여 주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해당된다고 봅니다. 우리도 지나 온 날들을 회상할 때,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함께 해 주심을 감지합니다. 혹시 여러분은 먹을 것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발을 동동거릴 때, 주님께서 나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신 적이 있었나요? 만일 그러한 일을 기억하신다면 주님의 다음 말씀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는 사람이 자기 자식을 잘 되라고 고생시키듯이 그렇게 너희도 잘 되라고 고생시키신 것이니, 이를 마음에 새겨 두어라. 너희는 너희 하느님 야훼를 경외하여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가 보여 주신 길만을 따라 가도록 하여라.”(신명 8:5-6)

마지막으로 감사입니다. 앞서 언급한 고난과 기억은 우리가 겪은 과거의 일들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통해 주님이 함께 하심을 기억하고, 치유 받고, 감사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감사는 일회성으로 끝나는 사건이 아닙니다. 주님께 드리는 감사에는 미래에 대한 차원, 더 나아가 궁극적인 선물에 대한 믿음도 담겨있습니다. 오늘 제2독서 야고보서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온갖 훌륭한 은혜와 모든 완전한 선물은 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 하느님 아버지는 변함도 없으시고 우리를 외면하심으로써 그늘 속에 버려 두시는 일도 없으십니다.”(야고 1:17) 이제 주님은 과거뿐만 아니라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고 소망하기에 다시 일어서서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약이 됩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추수 감사절과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을 맞아 우리는 한 해를 돌아보고 기쁨과 즐거울 때 함께 기뻐해 주신 주님께 찬양을 드립시다. 또한 슬픔과 고난이 처해 있을 때도 나와 함께 아파하고 위로해 주신 십자가의 주님이 계셨음을 기억하고 그 분이 주시는 은총에서 위로와 치유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오늘 이 예배를 통해 우리가 가꾸고 이룬 성과를 드리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과 기억도 봉헌합시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갑시다. 그리고 다음 주일부터 우리는 이 세상에 오실 아기 예수님을 희망하며 새해를 시작합니다. 그 희망의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길 기도합니다.

베푸신 모든 은혜에 감사드리며 만물의 왕이신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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