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20251224 성탄: 하늘과 땅이 만난 사건(성탄 밤)
작성일 : 2025-12-24       클릭 : 13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0251224 성탄 밤

이사 9:1-6 / 디도 2:11-14 / 루가 2:1-20

 

성탄: 하늘과 땅이 만난 사건

 

 하늘과 땅은 인류가 지구에서 살아가는 한 변할 수 없는 물리적 환경입니다. 우리는 이 사이에서 삶을 영위합니다. 동시에 인간은 이 공간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지 호기심을 갖고 탐구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인간은 하늘과 땅을 단지 물리적 공간으로만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하늘과 땅을 정신적 영역으로 상징화해서 이해하기도 합니다. 특별히, 동아시아에서는 예로부터 시간을 기록하고, 인간과 세상만물의 변화를 설명하는데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천간은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하늘의 원리를, 지지는 물질적이고 현실적인 땅의 환경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동아시아인들은 10개의 천간과 12개의 지지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개인과 사회의 변화를 해석해 왔습니다.

반면에 서양에서는 하늘과 땅을 어떻게 이해해 왔나요? 서양문명의 양대 축 중 하나인 히브리-그리스도교 문명은 하늘과 땅을 초월(超越)과 내재(內在)라는 원리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주의기도에서 우리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이 때 하늘이란 저 위에 있는 상공(上空)으로서의 물리적 공간이라기 보다는, 이 세상과는 다른 초월적이고 그러기에 순수하고, 복되며, 거룩한 곳을 뜻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구절은 당신의 뜻은 이미 하늘에서, 그리고 당신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져 있음을 압니다. 그러니 이제 이 땅에서 당신의 뜻이 어떻게 이루어졌고, 이루어지고 있고, 이루어질지를 알게 하소서라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서양사상은 하늘과 땅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존재인 신()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역사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19세기 독일 철학자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이 쓴 『정신현상학(Phänomenologie des Geistes)』은 절대정신이 역사에서 벌어지는 여러 현상과 과정을 통해 어떻게 자신을 드러내는지를 논구했는데, 제가 보기엔 근대 세속정신을 탐구한 그의 사상 역시 그 기저에는 그리스도교 정신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늘의 뜻이 어떻게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하나요? 교회는 예수님의 탄생을 하늘의 뜻이 실현되는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라고 믿습니다. 교회 신앙의 표준인 신경(信經)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우리 인간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혈육을 취하시고 사람이 되셨으며”.

그런데 문제는 순수한 선이고 거룩함 자체이신 하느님이 재물욕, 명예욕, 식욕, 수면욕, 색욕 등의 5가지 오욕(五慾)과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 등의 7가지 감정들로 혼탁한 이 세상에 과연 잘 안착할 수 있는가입니다. 우리가 이 밤에 들은 성탄 이야기는 하늘이 땅과 만난 바로 그 순간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루가 복음 저자는 시간을 초월하신 분이 시간 안으로 오신 그 때와 그 당시 세상을 통치했던 인물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당시 천하를 호령하던 사람은 아우구스투스라고 불렸던 옥타비아누스였습니다. 여기서 아우구스투스는 존엄(尊嚴)한 자라는 뜻입니다. 율리우스 시저의 암살과 후계자 자리를 놓고 그는 안토니우스, 레피투스와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정적들을 제거한 그는 로마의 공화정 시대를 마감하고, 최초의 로마황제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다스리는 제국에 호구조사를 내려 총 인구를 파악하고, 세금과 병역과 노역에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고자 하였습니다. 역사는 그로부터 로마의 평화(Pax Romana)’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온 천하의 중심 중에 중심인 로마, 거기에서 최초로 황제가 된 존엄하신 분이 다스리는 소위 평화라고 부르는 시대에 제국의 변방인 유다, 그것도 몰락한 나라의 왕 다윗이 태어난 베들레헴에서 또다른 존엄한 분이 태어납니다. 그런데 그 방식이 로마의 그것과는 아주 정반대의 모습입니다. 인간적으로 보기에 그것은 존엄하기는커녕, 남루하기 그지없습니다. 만삭이 된 아내 마리아를 데리고 본적지에 호구 신고하러 온 요셉은 산모가 진통이 시작되자, 당황해합니다. 그래서 이집 저집 찾아다니며 통사정을 해보았지만, 여의치 않았습니다. 머무를 방을 구하지 못한 그들은 할 수 없이 마구간에서 존엄하신 분을 낳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무렵, 들판에 목자들이 밤을 세워가며 양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루가 복음 저자가 목자를 언급한 것은 어쩌면 그 옛날 왕국을 세운 다윗도 양치는 목동이었다가 전쟁에 나가 블레셋 장수를 쓰러뜨린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던 것처럼, 들판에서 양이나 치는 변변치 못한 이들에게도 하느님의 놀라운 사건을 목격한 은총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사실, 당시 목자들은 주로 들에게 야영생활을 했기 때문에, 유대교 법을 지킬 수 없어서 종교적 계율을 못 지키는 죄인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늘에서 천사가 엄청난 계시를 전합니다. 그것은 오늘 밤 구세주가 다윗 고을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입니다. 루가복음 저자는 존엄자보다 더 높은 칭호인 구세주, 그리스도를 사용합니다. 구세주라는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하느님 혹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자에게만 쓰였습니다. 그리고 로마시대에는 황제나 통치자를 부를 때 쓰는 최상의 존칭이었습니다. 이제 천사는 이 단어를 마구간에 태어난 한 아기를 가리키며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기는 단지 이스라엘 민족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루가 2:10)에게도 해당된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무수한 군대로 나타나서 다음과 같이 찬양합니다: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루가 2:14)

예수님의 탄생 때 하늘에서 부른 이 찬양은 이제 땅에서도 메아리처럼 울릴 것입니다. 루가 복음 저자는 예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그를 따르던 수많은 제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임금이여, 찬미받으소서. 하늘에는 영광, 하느님께 영광!” (루가 19:38)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하늘에서 울려 퍼진 영광이 십자가 사건을 앞두고 땅에서도 응답합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성탄은 하늘과 땅이 만난 사건입니다. 그렇지만 설교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하늘과 견주면 땅은 완전함이 시간이라는 제한을 받는 곳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뜻이 온전히 구현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생길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그렇지만 세상만물과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은 더 이상 하늘에만 머무시지 않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땅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성탄 밤 전례는 그분이 하늘에서 내려오셨다는 역사적 사실을 다시금 기억하고 재현합니다. 루가 복음을 통해 우리는 그 내려오심이 이 세상이 흔히들 상상하는 그런 존엄하고 화려한 세속의 중심지가 아니었음을 되새깁니다. 그곳은 로마에서 봤을 때 변방의 영토이고, 예루살렘에서 봤을 때도 빵이나 굽고, 양이나 치는 베들레헴 어느 마구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아기를 보러 왔던 첫 손님들도 들판에서 양이나 치던 목자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늘은 그들에게 천상의 영광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그 영광은 아기가 커서 장차 하늘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 다시금 땅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그리고 2000년이란 시간을 거치면서 하느님이 세우신 교회는 이 복음이 전해지는 곳 어디든지 과거의 사건을 다시 현재로 불러내어 기념하고, 재현하고, 거기에 담긴 하느님의 구원사건과 그 뜻을 가슴에 담습니다. 마치 아기 예수의 어머니가 마음속에 이 일을 깊이 새겨 오래 간직했듯이 말입니다.      

잠시 후, 마구간 축복식 때 우리는 땅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하늘의 시간과 공간으로 옮겨 가서 아기 예수의 탄생을 목격하는 증인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기를 보고 기뻐했던 목동들처럼 기뻐하고, 그 이야기를 듣고 가슴속에 간직했던 마리아처럼 마음에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성탄의 기쁨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길 축원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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