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1 주님의 세례축일 이사 42:1-9 / 사도 10:34-43 / 마태 3:13-17 불과 물 한자문화권에선 올해 2026년을 병오(丙午)년이라고 합니다. 즉, ‘붉은 말의 해’입니다. 왜
병오년을 붉은 말의 해라고 부르는지는 동양사상의 구조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대로부터 동아시아인들은
세상을 양과 음이라는 기본구조 위에 불, 물, 나무, 쇠, 흙이라는 5가지
물질적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이해했습니다. 우리가 요일을 日月火水木金土라고 부르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 선조들은 양(陽)을 상징하는 10개의 하늘의 기운과 음(陰)을 상징하는 12개의
땅의 동물들의 조합으로 우리 인생을 해석하였습니다. 그 중 붉은 색은 화 기운을 뜻하는데, 병오(丙午)는 하늘과
땅이 모두 불 기운으로 충만한 해이기에 ‘붉은 말의 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올해는 역동적이고 열정으로 가득 찬 한 해가 될 거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불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 속성인 광기, 파괴
등의 기운도 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60년
전인 1966년 병오년 중국에서 일어난 문화대혁명입니다. 1949년
국민당 정부를 몰아내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중국공산당은 낙후한 경제를 재건하기 위하여 1958년부터
‘대약진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중국의 경제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과도한 경제성장률과
속도전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2,500만명이라는
엄청난 사람들이 굶주림과 기아로 사망하면서 이 운동을 주도한 모택동(毛泽东)은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모택동은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봉건적인 전통잔재와 지식인들의 자유로운 부르주아 사상을 척결해야 진정한 사회주의 혁명이 이루어진다고 하면서 어린 학생들과
사회불만으로 가득한 민초들을 선동하여 대규모 지식인 숙청, 철저한 문화재 파괴, 수많은 인민재판 등 장장 10년에 걸쳐 중국사회를 광기의 공포로
몰아넣었습니다. 그 결과, 적게는 수십만 많게는 수천만명이
죽었고, 유구한 중국의 전통과 사상이 파괴됨을 물론이고, 경제적으로도
더욱더 심각한 빈곤상태로 몰아넣었습니다. 이처럼 병오년은 그 열정이 잘못된 방향으로 갈 경우, 실로 어마어마한 재앙을 초래합니다. 1966년 병오년에 발생한 문화대혁명의 광기가 있은 지 60년이 흘러 다시 돌아온 2026년 병오년! 우리는 불이 주는 온기와 열정을 기대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60년
전 문화대혁명 같은 그 광기가 온 세상을 다시 뒤덮으려는 것은 아닌지 걱정과 불안감이 듭니다. 올해
벽두인 1월 3일 새벽에 미군이 베네수엘라에 기습적으로 쳐들어가
대통령을 잡아간 사건은 각 나라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약속 하에 작동하는 국제법 질서를 완전히 무시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야만적인 과거
시대로 되돌아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처럼 최소한의 규칙이 붕괴되어 분노와 화염으로 전염되어가고 있는
불의 해를 맞아 우리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세례를 기억하며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와 같이 노골적인
약육강식 상황 속에서 오늘 세례장면을 묵상할 때, 저는 예수님이 세례 받던 그 물에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왜냐하면, 불을 끌 수 있는 것은 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 세상을 지배하던 로마제국의 지배 하에서
제국의 변방 유다 지방은 로마의 꼭두각시 헤로데왕과 로마총독의 통치하에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유대인들은
짓밟힌 민족자존심과 과도한 세금납부 등으로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열혈당원파들은 단검을 숨기고
다니다가 군인들이나 로마제국의 앞잡이들을 살해하였고, 에세네파들은 세상을 등지고 사막 동굴에 숨어서
하느님의 심판이 속히 오길 기도하였습니다. 그러한 혼란하고 힘든 야만의 삶 속에서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외치는 예언자적 목소리에서 위안을 받으며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요르단 강으로 와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행렬 가운데 나사렛 사람 목수의 아들 예수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비범함을 알아본 세례자 요한은 놀라서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어떻게 선생님께서 제게 오십니까?” (마태 3:14) 그리고 자신은 세례를 감히 베풀 자격이 없다고 사양합니다. 이 장면은 스승이신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실 때, 베드로가 깜짝 놀라며 사양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선생님은 당연히 윗자리에 있어야 할 분으로 여겼던 세례자 요한이나 베드로에게 이러한 파격적인 모습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극구 사양하는 세례자 요한에게 예수님은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마태 3:15, 천주교
『성경』) 이 말씀은 마태오 복음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예수님이 직접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마태오 복음저자는 예수님이 앞으로 하실 사역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실 아무런 죄가 없으신
분이 물로 죄를 씻고 회개하는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지만, 죄인들 무리에 들어와서 죄인들이 하는 세례를
받으신 것은 장차 죄 없으신 분이 십자가형이라는 극악한 죄를 뒤집어쓸 거라는 것을 암시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모든 의로움을 이루는 것이라는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리하여 하느님의 의로움은
세상의 권세가가 휘두르는 의로움을 완전히 거꾸로 뒤집습니다. 세상의 의로움은 힘있는 자가 자신이 갖고
있는 힘을 이용하여 죄의 유무를 판단하고 단죄합니다. 거기에는 나는 죄가 없는 의롭고 고귀한 자이고, 너희는 죄를 진 불결하고 천한 자라는 대립구도가 있습니다. 그 대립구도가
존재하는 한, 인간들은 화해하고 하나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오직
증오와 파괴가 반복되는 윤회(輪廻)의 굴레 속에서 살아갈
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세례로 반전이 일어납니다. 무죄하고 의로우신 분이 죄스러운 사람들 속으로 오셨고, 그들처럼
물 속에 자신을 담그십니다. 그리하여 죄로 오염된 물을 깨끗하게 하시고 성스럽게 복원하십니다. 이처럼 오염된 곳을 정화하여 하늘과 다시 연결할 조건을 만드십니다. 성경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시자 홀연히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당신 위에 내려오시는 것이 보였다. 그 때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마태 3:16-17) 이리하여 막혔던 하늘과 땅, 단절되었던 하느님과 인간이 다시 연결되는 위대한 구원이
시작된 것입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동양사상의 대표적인 고전인 『도덕경(道德經)』에서 노자는 물을 도(道)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으로 활용합니다. 도덕경 8장에서 노자는 물이 가진 겸손과 다투지 않음의 미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문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上善若水。水善利萬物而不爭,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또한 78장에서는 물의 유연함과 그 속에 감춰진
강력한 힘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천하에 물보다 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다. 그러나 굳고 강한 것을 공격하는 데 있어 물보다 나은 것은 없다. (天下莫柔弱於水, 而攻堅强者, 莫之能勝。)” 저는 노자(老子)가 묘사한 물의 속성과 우리 기독교가 선포하는 하느님의 속성과 아주 유사하다고 느낍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속성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그는 … 갈대가 부러졌다 하여 잘라버리지 아니하고, 심지가
깜박거린다 하여 등불을 꺼버리지 아니하며, 성실하게 바른 인생길만 펴리라. 그는 기가 꺾여 용기를 잃는 일 없이 끝까지 바른 인생길을 세상에 펴리라. 바닷가에
사는 주민들도 그의 가르침을 기다린다.” (이사 42:3-4) 저는 이사야서의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하느님의
이러한 모습에 큰 위로를 받습니다. 부드럽고, 겸손하고, 그렇지만 쉽게 꺾이지 않으며 마침내 선을 이루시는 하느님의 의로움을 느낍니다.
참으로 하느님은 상선약수(上善若水)와 같습니다. 이제 가장 선하시고 가장 거룩하신 분이 세례를 받으십니다. 그리고
그 물이 하늘과 연결되어 비처럼 하느님의 은총을 지상에 내려 보냅니다. 증오와 광기의 불길로 온 세상이 불타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이 드는 새해 벽두에 우리는 예수님의 세례를 기념합니다. 그리고 그 물로 거짓 의로움을 씻어내고, 증오와 광기로 사로잡힌 이 세상의 불을 끌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베드로가 이방인 고르넬리오 집에서 그 가족에게 전도하신 말씀 중에 언급한 “만민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시켜 선포하신 평화의 복음”(사도 10:36)이 우리와 이 나라 나아가 온 세상 사람에게 전해져서 하느님의 평화가 이 땅에 임하기를 기도합시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세례 받으신 예수님, 온순한 비둘기
형상으로 우리에게 임하시는 성령, 구원의 목소리를 들려주신 성부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