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20260215 율법을 대하는 신앙인의 자세(가해 연중6주일)
작성일 : 2026-02-15       클릭 : 8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0260215 가해 연중6주일

신명 30:15-20 / 1고린 3:1-9 / 마태 5:21-37

 

율법을 대하는 신앙인의 자세

 

우리는 학창시절 지리(地理)시간에 한국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는 온대기후대에 속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같은 온대기후지만 한국의 날씨는 미국 서부나 유럽의 온대기후와 달리 덥고 추운 것이 극단적으로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인들은 옳고 그름, 맞고 틀림 등 이분법적 기질이 유독 강한 것 같습니다. 오늘날 0 1에 기반한 디지털 기술은 이러한 한국인의 기질과도 잘 맞는 것 같습니다. 또한 한국인의 빨리빨리기질도 이분법에 기반한 빠른 의사결정과 맞물려서 다른 나라들 보다 더 빠른 변화와 성장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는 법! 한국인들의 강한 이분법적 성질은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사고방식을 낳고, 급기야 반대되는 집단 간의 혐오와 갈등을 유발하는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분법적 풍토는 한국교회의 문화에도 유입되었는데, 한쪽에선 믿기면 하면 됐지, 왜 따지느냐고 하면서 감성에 기반한 신앙만 강조하는 반면, 또다른 한쪽에선 그러한 감정적 신앙을 경시하고 계명이나 교리를 강조하는 율법적 실천을 중시하기도 합니다. 좀 거칠게 표현하자면, 한국교회는 하느님의 은혜를 감성적으로 강조하는 한국 개신교와 교도권이 제시하는 교리와 계명을 강조하는 한국 천주교로 나눠져서 서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현실은 이 양극단 간에 굉장히 복잡한 회색지대가 존재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범주화해서 흑과 백, 참과 거짓으로 명확하게 가르고 판단하려는 유혹에 사로잡힙니다. 그래서 신교는 오직 은총으로만(Sola Gratia)’이라는 구호 하에 구교가 하느님의 은총을 등한시하고 선행만 쌓으면 구원받는다고 비난합니다. 반면에 구교는 신교가 신앙의 실천 없이 그저 믿습니다라는 말만 늘어놓는다고 비난합니다. 그리고 각자의 관점에 근거하여 성경말씀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께서는 율법과 신앙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지니셨을까요? 오늘 들은 복음에서 우리는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재해석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야훼로부터 십계명을 받은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십계명은 모든 율법의 근간이 되는 헌법과도 같습니다. 오늘 복음은 십계명 중 살인하지 못한다, 간음하지 못한다, …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하지 못한다” (출애 20:13-16)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먼저, ‘살인하지 못한다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구약은 살인하지 못한다라는 십계명을 근거로 남을 때려 죽인 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하여야 한다” (출애 21:12)는 율법을 정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 형제 더러 성을 내거나, 바보라고 하거나, 미친 놈이라고 하는 사람은 점점 더 중한 벌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자기 형제란 단지 남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여자들까지 포함된 이스라엘 동족 모두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넓게는 모든 사람으로까지 확장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하신 이유는 살인이라는 현상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상대방에 대한 분노라는 감정에서 출발해서 마침내 바보라는 말로 표현되어 나오고, 점점 그 강도가 강해져서 미친 놈이라고 통제가 안되는 상태에까지 도달하게 되며, 결국에 가서는 살인을 저지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살인으로 가는 첫 단계인 화내는 것부터 제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마음을 다스리고, 혀를 길들여서, 살인으로 치달을 수 있는 상황까지 번지지 못하게 예방하라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러한 자신에 대한 다스림과 더불어 관계가 틀어진 이웃과 화해를 통해 평화를 되찾으라고 하십니다. 특별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는데, 그것은 먼저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에 너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 그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그를 찾아가 화해하고 나서 돌아와 예물을 드려라.” (마태 5:23-24) 이 단어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이 무엇을 중시하고,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시는지 헤아릴 수 있습니다. , 관계가 틀어진 이웃이 있을 때에는 오히려 분심이 들어 하느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릴 수 없으므로, 어긋난 관계를 개선함으로써 분노나 욕하려는 충동을 제어해서 죄의 뿌리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예배가 예배다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간음하지 못한다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간음이라는 행동 배후에 있는 인간의 어두운 욕망을 꿰뚫어 보시고, 그 원천을 차단하라고 하십니다. 성경에서 음란한 생각이란 단지 스쳐 지나가는 감정이 아니라, 실제로 의지가 실린 그래서 여건만 되면 실행해보겠다는 강한 내적 의도를 의미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간음하지 마라는 십계명에서 파생된 당시 유다 남자들이 남발하고 있는 이혼관행에 대해서도 비판하십니다. 예수님 시대에 여자는 이혼할 권리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여자는 인간이 아닌 재산과 같은 소유물로 간주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남자들은 그나마 아량을 베푼다면서 이혼장을 써주었습니다. 만약 이혼하고도 이혼장을 써주지 않을 경우, 이혼당한 여자가 재혼을 하려고 할 때, () 남편이 소유권을 행사해서 여자의 앞길을 훼방 놓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혼장을 써준다는 것은 소유권을 포기한다는 것이고, 이혼당해서 살길이 막막한 여자가 생존하기 위해 재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건데, 현대인의 관점으로 볼 때 참으로 한심하고 알량하기 그지없는 안전장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음행 한 경우를 제외하곤 절대로 이혼하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 그 당시 남편들의 책임의식을 강조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웃에게 거짓 증언하지 못한다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실제로 예수님 시대에 추궁현장에서 도망치려는 의도로 맹세가 남용되곤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하늘, 하느님의 옥좌, , 예루살렘 등을 걸고 맹세하면서 자기 증언이 참되다고 주장함으로써 이웃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여 상대를 구렁에 빠뜨리곤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맹세를 악용하는 것을 두고 레위기 19 12절의 말씀, 너희는 남을 속일 생각으로 내 이름을 두고 맹세하지 말라. 그것은 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라는 말씀으로써 비판하십니다.

이상과 같이 예수님은 드러난 죄만 짓지 않으면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는 법률적 잣대에 근거한 율법준수가 아니라, 죄의 뿌리가 되는 생각과 마음, 내적 의지까지 근원적으로 들어가서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철저한(radical) 율법준수를 강조하십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한국교회는 사도 바울이 말씀하신 우리는 사람이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놓이는 길이 율법을 지키는 데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데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을 지킴으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려고 그리스도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갈라 2:16)라는 말씀을 가지고 율법과 은총을 이분법적으로 나눠서 율법은 하찮고, 은총만 소중한 거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을 준수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은총을 믿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교회가 사도 바울을 잘못 이해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과 은총을 이원론적으로 갈라 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그렇고, 예수님도 그렇고, 모두 율법의 껍데기를 지키면 된다는 태도가 아니라 율법이 갖고 있는 근본정신, 다시 말해 하느님이 당신의 모상인 인간 안에 심어 주신 내면의 법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어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마태 5:17)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를 따르는 우리들은 바리사이파들 보다도 더 철저하게 주님의 율법정신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하십니다: 지금 내가 한 말을 듣고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 비가 내려 큰물이 밀려오고 또 바람이 불어 들이쳐도 그 집은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는다.” (마태 7:24-25)

이제 설교를 마치며 기도합니다. 한국교회가 이분법이라는 논리 속에 주님의 율법을 외면하고 그저 주님의 은총, 주님의 복만 바라는 이기적인 모습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또한 주님의 은혜보다는 자기 힘과 능력만으로 성취하려는 오만한 태도에서 벗어나 겸손하게 주님만을 믿고 따르는 마음을 갖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특별히 이번 사순절기 동안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한국교회와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우리 각자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구원의 길을 향해 나아 가길 간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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