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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공동설교 - 가해 연중 26주일 - 오동균(키프리안) 신부
작성일 : 2014-09-29       클릭 : 930     추천 : 0

작성자 홀리로드  

 

  “아래로부터의 권위” 
 
 
 
 
(마태 21:23-32)
오동균(키프리안) 신부/ 대전주교좌교회
 
 
예수님에게 당시 대사제와 원로들이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합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당시 유대교의 성전체제는 대사제(수석사제)와 원로들에 의해 지배되는 위계적 질서를 형성했습니다. 이 질서에서는 그들에게 권위는 권력과 동일어였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성전에 나타나 성전 뜰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을 쫓아내고 그 판을 뒤집어 엎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소경들과 절름발이들을 고쳐주었습니다. 이른바 <성전정화>사건입니다. 대사제와 원로들은 이일을 위험하게 여기고 이 문제를 트집잡았습니다. 그래서 예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세월호의 유가족들이 광화문 앞에서 세월호사건을 올바로 조사할 특별법을 만들기 위해 모여 있은지 오래되었습니다. 그 중 한분은 40일간 단식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청와대와 정부 여당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 시작하였습니다. 협상이다 합의다 해가며 일이 비틀어지기 시작하더니 정치하는 사람들의 교묘한 언론플레이와 이에 맞장구치는 언론의 덕으로 점점 이들의 목소리는 작아져 가는 듯 한 느낌입니다. 더구나 인터넷에서 이들을 향해 <당신들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거냐고 따지고 비아냥대는 누리꾼들이 생겨납니다.
 
예수님이 성전을 정화시키신 사건에 대해 대사제와 원로들이 빼어든 칼이나 지금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들이대는 칼은 바로 권한에 대한 질문입니다. 과연 이 권한은 무엇입니까? 성서에서 사용한 이 단어는 희랍어 ‘εξουσια엑수시아’입니다. 이 말은 ‘어떤 행위를 할 수 있는 힘’을 뜻하는 말입니다. 백성이 어떤 일을 하려면 갖가지 법과 질서에 규제를 받습니다. 예수님 당시 성전체제에서는 더욱 문턱이 높았습니다. 권위 있는 자들은 성전을 차지하고 거기서 짬짜미를 해가며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대는 <빨대>였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이 설치해 놓은 소위 ‘질서’를 어지럽히는 난동꾼 예수에게 <권한>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바로 이렇게 깔아뭉개질 수 있는 단독자요 외로운 백성의 한사람으로서 한 행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성전체제에서 예수의 행동은 당시의 권세가들에게 근거 없는 난동꾼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권위는 하늘에서 온 것이며 동시에 백성들의 마음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권위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이어지는 예수의 질문에서 ‘세례자 요한’의 권위가 예시됩니다. 이 되받아치는 질문에 성전체제의 권위를 가지고 있던 자들은 입을 다물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권위는 군중들에게 인정된 권위였기 때문입니다.
 
엑수시아라는 단어에 나타난 권위의 기초는 현재의 권력을 유지하는 질서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백성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아래로부터의 권위>라고 합니다. 이것은 이미 주어진 권력에 의한 권위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 즉 공공성의 권위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명백하고 자명한 권위는 바로 이러한 백성의 마음에서 인정받는 권위입니다.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이것을 예수님이 자신을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신 모습에서 찾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은 국민들의 생명을 가지고 자기 배를 불리는 해양마피아들의 온갖 비리를 덮어두었던 ‘질서’에서 터진 엄청난 비극이었습니다. 그 유가족들의 원통함을 향해 지금도 <무슨 권한>을 따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의 마음에 유가족들의 호소는 모두가 인정하는 권위로 자리잡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백성들의 마음과 하느님의 마음이 맞닿는 곳에 예수님의 권위가 존재했습니다. 이 권위는 지엄하신 권위라기 보다 아래로부터의 권위입니다. 아래로부터의 권위는 누구에게나 인정되는 공개적이고 명백한 권위이기도 합니다. 단지 법과 질서로 줄을 세우려고 해서 이룩되는 권위는 결국 무너져 내리고 말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교회의 권위가 실종되어 아쉬워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권위는 백성들의 마음과 하느님의 마음이 맞닿아 있는 현장에서 찾아야 합니다. 더 이상 교회내의 위계질서에서 그 권위를 회복할 수 없습니다. 교회 내에서 공공성이 살아나면 권위는 회복될 것입니다. 교회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권위는 바로 교회의 정화와 공공성의 진작을 통해서 이루어 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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