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빚쟁이(마태 18:21-19:1)
작성일 : 2021-08-12       클릭 : 444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오늘의 말씀: “네가 애걸하기에 나는 그 많은 빚을 탕감해 주지 않았느냐?”

오늘의 묵상: 빚쟁이

“빚쟁이 발을 뻗고 잠을 못 잔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남에게 빚을 진 사람은 늘 그것을 갚을 일이 걱정되어 마음 편한 날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 속담처럼 제가 관여하고 있는 협동조합에서 올 초 이사회를 했는데 적자가 제법 많이 발생해서 저를 비롯해 이사진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늘 마음 한쪽에 부담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용서를 설명하실 때 빚을 탕감하는 것에 빗대어 말씀하십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비유를 듣고 용서가 가지는 의미를 현실감 있게 느꼈을 거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하루 품삯이 1데나리온이고, 1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 즉, 약 16년 품삯이 되는 당시 상황으로 볼 때 임금에게 일만 달란트를 빚졌다는 것은 16년 연봉의 약 만 배에 해당하는 규모로서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상상 불가한 액수입니다. 그런데 임금으로부터 이처럼 천문학적인 빚을 탕감받은 자가 자기 동료한테는 백일 치 품삯인 100데나리온을 악착같이 받아내려고 한다는 비유를 듣고서 청중이 느끼기에 얼마나 기가 찰 노릇이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날 “미안해” 한마디로 끝내는 가벼운 이 세태에 복음이 주는 용서의 무게가 얼마나 대단한지 다시금 느낍니다. 그렇지만 빚은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여전히 우리를 짓누르는 실제적이고 엄청난 경제적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가볍게 말로 남발하는 용서보다는 빚 탕감과 같이 채권자가 엄청난 권리 포기를 해야 하는 ‘실질적인 용서’는 오늘날도 여전히 엄청난 파급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십자가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예수님의 용서는 그저 “용서한다”라는 말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빚 탕감처럼 엄청난 권리를 포기하면서까지 나의 빚을 탕감해 주셨다는 것을 다시금 되새겨 봅니다. 이러한 십자가의 예수님이 주신 무한하신 용서를 생각하며 자기희생 없이 말로만 그치는 우리의 가벼운 용서를 반성해 봅니다.

오늘의 기도: 빚쟁이의 압박에서 풀어주신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저도 그런 당신을 닮게 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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