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현재를 살고 있는 인간의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하여(맥추감사주일)
작성일 : 2022-07-03       클릭 : 244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20703 맥추감사주일

신명 8:1-4 / 히브 11:32-40 / 마태 6:25-34

 

 

현재를 살고 있는 인간의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하여

 

 

 

우리 그리스도교는 구약과 신약이라는 두 개의 경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고, 구약은 예수님 이전, 즉 이스라엘 사람들과 하느님 간의 관계가 중심입니다. 그래서 구약은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의 종교인 유다교의 경전이기도 합니다. 구약 중에서 특히 앞부분에 있는 다섯 권의 책, 즉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가리켜 모세오경(Five Books of Moses)’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유대인은 율법을 뜻하는 토라(Torah)’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모세가 이 책들의 저자라고 해서 모세오경이라고 하고 있지만, 성서학자들의 연구결과, 이것은 모세 한 사람이 한 번에 쓴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서 쓰고, 다듬고 하는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된 것입니다. 이 다섯 권의 책을 잠깐 말씀드리자면, 창세기(Genesis)는 세계와 인류의 기원 그리고 하느님 백성으로 간택 받은 유대인의 기원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고, 출애굽기(Exodus)는 이들이 하느님의 손길로 이집트 노예생활에서 해방된 것을 기록하고 있으며, 레위기(Leviticus)는 일종의 사제들의 책으로서 각종 종교예절에 대한 규정을 담고 있고, 민수기(Numbers)는 이집트를 탈출한 오합지졸 집단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어떻게 민족으로 조직화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신명기(Deuteronomy)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모아놓고 지난날을 회고하며 하느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이러한 은혜를 잘 간직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연설하는 내용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신명기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계명을 성심껏 지켜야 할 것이다. 그래야 너희는 행복하게 살며 번성할 것이고 야훼께서 너희의 선조들에게 주겠다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다”(신명 8:1)

계명을 거듭 되풀이하여 알려준다는 뜻을 지닌 신명(申命)는 약속의 땅을 굽어보면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한 고별설교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이 설교를 마치고 생을 마감합니다. 그런데 실상 신명기가 쓰인 시대는 모세 생전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을 정복하고,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고, 다윗왕과 솔로몬왕이라는 부강한 시대를 거쳐, 북쪽으로는 이스라엘왕국, 남쪽으로는 유다왕국으로 분열되었다가, 북쪽에 있는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하고 남쪽 유다왕국만 남아 있던 기원전 8세기에서 7세기경에 집필된 책입니다. 왜냐하면, 그 무렵 유다왕국은 주변에 강대한 나라들에 에워싸여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부유함을 온 백성이 고루 누리지 못하고 심한 불평등과 불의로 인해 절대다수 사람들이 비참한 지경에 놓이기 되었습니다. 이에 몇몇 사제집단은 이러한 사회갈등을 극복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원체험인 출애굽 사건과 하느님과 처음으로 맺은 계약의 정신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모세의 입을 빌어 신명기를 쓴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명기는 과거를 회상하는 책이자, 현재를 개혁하는 책입니다.

이와 같이 과거를 회상하며 새롭게 해석하는 태도를 신약시대 초대교회에서도 계승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2독서 히브리서의 저자 역시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영웅들, 기드온, 삼손, 다윗, 사무엘 등을 언급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나긴 역사와 그 역사를 통해서 섭리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회상합니다. 특별히, 그들이 받았던 고난을 상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모두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느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히브 11:39)”

그리고 신약시대에 와서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약속한 것으로 완성을 이루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제1독서인 구약과 제2독서인 신약 모두 약 천년이라는 긴 시간이라는 간극에도 불구하고, 현재라는 시점에서 과거를 어떻게 상기하고 그 속에서 현재에 필요한 신앙의 방향을 찾았습니다. 이러한 자세는 우리 동양의 고전, 논어(論語)에 나오는 옛 것을 익히고 미루어서 새것을 안다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과 일맥상통합니다.

이처럼 인간은 현재를 살지만, 과거와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과거로부터 지혜와 교훈을 얻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단지 과거를 답습해서 현재를 살자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가올 현재, 즉 미래를 좋게 하려는 염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이란 현재를 살면서, 과거를 회고하며, 동시에 미래를 희망하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과거로부터 늘 지혜와 교훈만 얻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미래가 늘 좋아질 거라고 희망만 하진 않습니다. 그보다는 과거로부터 후회와 상처가 더 많고, 미래를 희망하기보다는 걱정하고 불안이 더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인간의 실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우리들의 실상에 대하여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 이런 것들은 모두 이방인들이 찾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신다.”(마태 6:31-32)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에게 위로를 주심과 더불어 도전도 주십니다. 위로는 모든 생명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생명도 소중히 여기시어 보호해 주신다는 점입니다. 이것에 관하여 이사야 예언자는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말씀해 주십니다:

“‘야훼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고 너 시온이 말하였지. 여인이 자기의 젖먹이를 어찌 잊으랴! 자기가 낳은 아이를 어찌 가엽게 여기지 않으랴! 어미는 혹시 잊을지 몰라도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 너는 나의 두 손바닥에 새겨져 있고 너 시온의 성벽은 항상 나의 눈앞에 있다.(이사 49:14-16)”

나를 낳은 부모보다도 더 나를 기억하시는 하느님, 그리고 그러한 분이 나에게 걱정하지 마라. 나는 네가 필요로 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말씀은 내 존재의 기반이 흔들릴까봐 걱정과 불안에 떠는 우리에게 크나큰 위로가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위로를 내 마음 깊숙이 받아들이기 위해선 현재 여러 가지 걱정과 근심, 그리고 이것의 원인이 되는 과거로부터의 질곡에서 해방되어야 한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지나간 과거에 대한 집착도,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도 아닌, 오직 현재에 집중하는 태도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믿음입니다. 주님은 이 믿음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입장에서 보면 도전과도 같습니다. 우리 영성은 이것을 '회심(metanoia)'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메타노이아란 사고방식이나 관점, 마음을 바꿈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회심을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특별히 경쟁이 치열한 오늘날 근심걱정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이기에 더더욱 힘듭니다. 그런데 이 모든 근심걱정의 실체는 무엇인가요? 제가 보기엔 많은 사람들은 돈과 명예를 중시하기에 그것을 잃을 일이 생기면 근심걱정을 하고, 그것을 얻을 일이 생기면 즐거워합니다. 왜냐하면 돈이 없으면 가난한 생활을 해야 하고, 명예가 없으면 무시를 당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가 항상 근심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의 안위(安危)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일 사람이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잊을 수 있고, 사사로움이 없으며, 심지어 죽음마저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마음을 동요시키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처럼 자기자신, 가정, 기업을 다스리는 일을 탐욕과 집착이 아닌, 진정으로 자신을 자유롭게 초월하는 마음으로 다스린다면 오히려 더 잘 다스릴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3)”

이것이 신앙의 역설입니다. 이것은 자신을 학대하거나 부정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길입니다. 이러한 집착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워질 때, 더 큰 선물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과 비슷한 인생의 지혜가 동양의 고전, 노자(老子)에도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몸을 사랑하기를 천하와 같이 한다면, 그에게 천하를 맡길 만하다.

(愛以身爲天下者, 乃可以託天下)

이 말은 내 몸처럼 천하를 사랑하는 자라야만, 천하를 맡을 만하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천하를 우리 신앙의 언어로 해석하자면, 바로 하느님 나라를 의미합니다. 주님은 이제 노자가 말한 것 보다 한 발 더 나아가서 그렇게 천하, 즉 하느님 나라를 위해 일할 때 하느님의 큰 은총이 있을 거라고 약속하십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2022년 한해의 중간,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모세와 히브리서 저자처럼 지난 시간을 회고하고, 다가올 때를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주님께서 그 동안 베푸신 섭리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앞으로 올 시간 역시 주님께서 함께 해 주시길 청하면서, 우리 역시 신앙의 지혜로 잘 걸어갈 것을 결단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만일 우리 각자가 아직 과거의 일들로 인해 오늘 내 삶에 영향을 받고 있거나, 혹시 모를 미래를 걱정근심하고 계시다면, 우리를 부모님보다 더 아끼고 기억하시는 주님께 내 존재를 의탁하시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주님은 내가 원하는 것보다 더 근원적인 것을 아시고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총으로 현재를 기쁘고 충실히 사시고, 다가올 미래를 힘차게 걸으시길, 우리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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