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유용성과 노인의 지팡이(다해 연중19주일)
작성일 : 2022-08-07       클릭 : 193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20807 다해 연중19주일

이사 1:1, 10-20 / 히브 11:1-3, 8-16 / 루가 12:32-40

 

 

 

유용성(有用性)과 노인의 지팡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 놓고 준비하고 있어라.(루가 12:35)”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다가 저는 20대 시절 수도원에 갓 들어갔을 때, 수련장 신부님이 늘 강조했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는 순명에 대하여 강의하면서, 수도회 창립자 이냐시오 성인의 말씀인 "노인의 지팡이처럼 순명해야 한다"는 말씀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의 부르심과 교회의 선교에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유용성(availability)'이라는 단어입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수련원에 입회한지 얼마 되지 않은 강의시간에 수도복 입는 법을 가르쳐 주면서 예수회의 수도복은 당시 프란시스회, 도미닉회, 그밖에 일반 신부님들의 복장과 달리 입고 벗기가 매우 간편하다고 하시면서 그 이유는 하느님과 교회의 선교적 부름에 바로 응답할 수 있는 기동성을 상징한다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수련원의 생활규칙에 대해서도 알려주셨는데, 그 중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문을 닫지 말고 약간 열어놓는 습관을 들이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 이유 역시 외부의 소리에 지체 말고 바로 응답할 수 있는 준비된 태도를 몸에 익혀야 하기 때문이라는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이러한 것들이 몸에 잘 익지 않아서 굳이 이렇게까지 유별나게 해야 하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 때 배운 가르침의 의미가 참 소중하였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당시 수련장 신부님이 노인의 지팡이처럼 순명하라는 의미로 가끔씩 납득하기 힘든 일을 시킬 때, 제 생각과 고집을 꺾기가 종종 힘들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느님 말씀과 교회의 필요에 유용하게 쓰임을 받을 수 있도록 수련기간 중 머리로만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 그러한 습관이 몸에 배도록 훈련받았습니다. 그래서 가끔 후배 신학생들이 책 읽고 암기해서 시험보고, 학점 따고 면접보고 통과해서 서품 받는 것을 보면 좀 아쉬운 느낌을 받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초기 영국선교사들이 우리교회 터에 최초의 신학교를 세울 때, 그 이름을 강화수도원이라고 했던 것도 사제가 될 사람들은 단지 성경과 교리지식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수도원 수도사와 같이 몸과 마음도 갈고 닦는 영적훈련도 하겠다는 목표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항상 준비하고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유대인의 혼인풍습을 예로 드십니다. 예수님 시대에 혼인은 신랑이 먼저 신부 집에 가서 신부를 데리고 신랑집으로 오면서 시작됩니다. 대략 해떨어질 무렵이 됩니다. 만일 신부집이 멀다면 혼인예식과 잔치가 더 늦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예수님은 신랑이 오기를 기다리는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이야기를 하셨고, 오늘 복음에선 언제 올지 모르는 신랑신부를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잔치를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신 겁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중요한 점은 신랑신부가 왔을 때 바로 잔치를 할 수 있게 준비하는 자세, 유용성(availability)’입니다. 다시 말해, 잔치를 진행하는 사람들이 신랑일행이 언제 올지 모르니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있다면, 옛날식으로 말하면 종들은 엄한 벌을 받았을 것이고, 오늘날로 말하면 계약취소는 물론이거니와 배상금을 물어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강조하시는 유용성은 비단 신앙생활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매우 중요한 덕목입니다. 어떤 업종을 불문하고 기업이 그 분야에 전문적인 기술과 역량을 준비하고 있지 않으면, 그 업체는 기회가 와도 그것을 놓칠 것입니다. 정부나 의회, 사법기관처럼 국가운영을 책임지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분야에 대한 능력을 평소에 갈고 닦지 않았다면, 실제로 그 임무가 주어졌을 때 제대로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는 습관을 기르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확실함을 중요하게 여기는 세상 속에서 이런 노력이 혹시 헛된 낭비가 되지 않을까하는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열심히 노력해 봤자 만일 쓰임을 받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냐고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의문에 대하여 오늘 제2독서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 주고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증해 줍니다.…… 우리는 믿음이 있으므로 이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는 것, 곧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다는 것을 압니다.(히브 11:1, 3)” 이 말씀은 믿음이야말로 인간으로 하여금 불확실함과 온갖 회의에도 불구하고 우리역사를 추동시킨 힘이었으며, 더 나은 미래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하느님나라를 향해서 희망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는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믿음을 가지고 노력한 인물로 노아와 그 가족 그리고 아브라함과 사라를 예로 듭니다. 노아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주위사람의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다가 올 대홍수를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익숙하게 살고 있던 고향땅을 떠나 하느님이 약속하신 땅을 향하여 이동했으며, 사라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불가능한 나이임에도 불구하도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거기에 희망을 두어서 마침내 아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로부터 수많은 후손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은 우리를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하느님이 약속하신 미래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내적인 힘입니다. 그 믿음으로부터 우리는 참다운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것은 이 믿음과 희망이 단지 내가 살고 있는 이승에서만 실현된다는 것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들은 모두 믿음으로 살다가 죽었습니다. 약속받은 것을 얻지는 못했으나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기뻐했으며 이 지상에서는 자기들이 타향사람이며 나그네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 그러나 그들이 실지로 갈망한 곳은 하늘에 있는 더 나은 고향이었습니다.(히브 11:13, 16)”

이 세상에 깊숙이 자리 잡고 열심히 살면서도 이 세상을 달관하는 자세! 어쩌면 이것이 우리 신앙인들이 가져야 할 인생관이 아닐까요? 우리에겐 두 개의 고향이 있습니다. 하나는 내 몸이 태어난 곳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돌아갈 곳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희망하는 것이 지금 당장 아니 내 당대에 이루어지는 것을 못 본다고 하더라도 낙담하시지 말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큰 섭리 속에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마침내 원대한 희망이 실현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온갖 부조리와 모순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면서 매일매일 나를 새롭게 해 나갈 수 있는 힘입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젊은 시절 수련장 신부님으로부터 노인의 지팡이처럼 순명하라는 말씀을 들었을 땐, 저는 그저 머리로만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 단순하고 소박한 말의 의미를 조금씩 몸으로 느낍니다. 작년 강화읍 교회로 부임해서 연세 많으신 교우님들을 보면서 또 오랜 역사를 지닌 교회건물을 보면서 노인과 지팡이 간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특별히 아침저녁 성당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노인인 이 한옥성당은 지팡이인 문지기 나를 필요로 하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면서 어쩌면 노인이신 하느님은 당신과 함께 동반할 지팡이로 나를 필요로 하시겠구나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그러면서 노인과 지팡이가 결국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노인은 지팡이를 믿고 지팡이 역시 노인을 믿는 관계! 이것이 진정한 순명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이 나를 믿고 나 역시 하느님을 믿고 맡기면 하느님은 나를 당신의 지팡이로 쓰시면서 필요한 곳으로 가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는 곳이 하느님의 고향이자 또한 나의 고향이기도 할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을 가져봅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교우 여러분도 오래된 이 한옥성당이 노인처럼 그리고 여러분이 그 노인의 지팡이처럼 한 몸이 되어 지금까지 우리교회를 지탱해 왔음을 느껴봅니다. 그리고 우리교회의 지팡이 되어주신 교우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당신의 지팡이로 삼고 행복한 곳으로 인도해 주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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