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균형과 회복을 위한 진통(다해 연중20주일)
작성일 : 2022-08-14       클릭 : 202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20814 다해 연중20주일(평화통일주일)

예레 23:23-29 / 히브 11:29-12:2 / 루가 12:49-56

 

 

 

균형과 회복을 위한 진통

 

올해는 광복 77주년입니다. 교회는 이번 주일을 연중20주일과 동시에 평화통일주일로도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오늘 전례독서의 말씀을 우리민족의 역사라는 지평 속에서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1독서와 2독서는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먼저 1독서 말씀의 배경은 유다왕국이 멸망당한 후입니다. 예레미아 예언자는 그 멸망의 원인 중 하나로 나라를 멸망의 길로 잘못 인도한 거짓 예언자들을 언급합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질책합니다: 예언자라는 것들이 내 이름을 팔아 예언하는 소리를 나는 다음과 같이 들었다. ‘꿈을 꾸었다.’고 하면서 거짓말하는 것도 나는 들었다. 제 망상을 내 말이라고 전하는 이 거짓 예언자들이 언제까지 제 마음에 떠오른 생각을 내 말이라고 전할 것인가?(예레 23:25-26)” 예레미아 예언자가 하느님의 올바른 계시를 유다민족에게 제대로 전하지 않은 거짓 예언자와 그런 잘못된 말씀으로 국가를 파멸로 몰아넣은 왕들을 준엄하게 심판하였듯이,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역사가이신 단재 신채호(申采浩 1880~1936)선생은 일제시대 조선사편수회를 중심으로 우리민족을 일본에 동화시키려는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에 기반을 둔 거짓된 우리역사 연구를 신랄히 비판하면서 제대로 된 민족의 역사만이 희망이다(1923<조선혁명선언>에서)”를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만주에 흩어져 있는 우리 고대역사 현장을 직접 발로 누비며 단군조선, 부여, 고구려 등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에 두루 퍼져있던 우리 상고사를 연구하였습니다. 신채호 선생의 역사연구는 오늘날 일제가 남긴 식민지 역사학과 중국 공산당이 왜곡하고 있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을 극복하고 우리의 뿌리를 바로잡을 수 있는 바른 정신적 가치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신채호 선생의 역할은 구약시대 예언자와 일맥상통한다고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오늘 2독서 히브리서는 이집트 종살이에서 하느님의 종 모세를 통해 해방되었을 때부터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나라를 건국하기까지 천신만고를 겪을 때 앞장섰던 인물들을 언급하며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은 부활한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사실, 히브리서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히브리인들, 즉 유대계 그리스도인 교회공동체에 보낸 편지입니다. 그래서 비록 유다교를 떠나서 그리스도교로 옮겼지만, 그들의 피 속엔 유대인의 역사와 민족의식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히브리서 저자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고, 이것을 교회의 신앙으로 승화시키고 해석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역시 우리역사와 민족의식을 하느님의 구원섭리라는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럴 때 유구한 우리 역사 안에서 함께 하신 하느님의 손길을 더 깊이 느끼고, 그것을 통해 주님이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를 어디로 부르시는지 더 잘 알아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바로 그러한 들음, 그러한 봄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은 자연현상을 보고 날씨를 예측하는 군중들을 향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하늘과 땅의 징조는 알면서도 이 시대의 뜻은 왜 알지 못하느냐?(루가 12: 56)”

그러면 예수님이 언급하신 당시 시대의 징표는 무엇이었나요? 그것은 평화가 아닌 분열된 세상이었습니다. 마치 한 가정 안에 아버지와 아들이 맞서고, 어머니와 딸이 대립하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갈라진 것과 같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진정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 당신이 감당해야 할 세례, 다시 말해 십자가 고난을 준비하시면서 당신의 마음이 얼마나 괴로운지 모른다고 하십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볼 때,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과 승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기원 후 66년에 유다 남부 마사다(Masada)에서 혁명당원들을 중심으로 유다인들이 로마제국에 결사항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70년 예루살렘 성전은 로마군대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유다민족은 거의 2000년 가까이 고향에 못 돌아가고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일을 미리 내다보셨기에 그 도시를 내려다보시고 오늘 네가 평화를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너는 그 길을 보지 못하는구나하시며 눈물을 흘리셨던 것입니다.(루가19:41-42 참조)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내일 우리는 광복 77주년을 기념합니다. 마치 하느님이 모세를 통해 이집트 노예생활에서 히브리민족을 해방시키셨듯이, 연합군의 승리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 그리고 수많은 민중들의 인내심으로 하느님은 우리에게 광복이란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평화로 하나 되지 못하고 분열과 대립으로 남과 북이 서로 맞서 싸우는 바람에 그 상처가 오늘까지도 너무도 크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보고 눈물을 흘리셨듯이, 아마도 지금 우리민족의 이런 모습을 보시면서 슬퍼하지 않으실까요? 그런데 우리가 시야를 이 한반도에만 머물지 말고 조금 넓게 본다면 현재 중국대륙과 대만관계, 다른 말로 양안(兩岸)관계는 미사일과 전투기가 날라 다닐 정도로 한반도의 남북관계보다도 더 험악한 상황입니다. 77년 전에 2차 세계대전은 끝났지만, 이곳 동아시아는 여전히 일촉즉발 전쟁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습니다. 이 속에서 시대의 징표, 구원의 사명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성공회 신앙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비아메디아(Via Media), 즉 중용의 도(中庸之道)를 지향한다는 점입니다. 선명하고 화끈한 것을 좋아하는 우리민족의 정서 상 쉽게 받아들이긴 힘들 수도 있으나, 너무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분열하고 있는 우리사회, 그리고 한반도, 나아가 동아시아의 상황 속에서 이 중용의 정신은 극단 간에 균형을 잡아주고, 분열을 회복하기 위한 중요한 덕목이라고 봅니다. 그러기에 중용이야말로 평화를 회복시키기 위해 현재 시급히 요청되는 시대정신입니다. 중용은 단지 어중간한 타협이 아닙니다. 중용에서 중()은 치우지지 않는 자세, 과하거나 모자라거나 하지 않는 태도,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절제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용()은 이러한 것을 한결같이 실행함입니다.

성공회는 역사적으로 볼 때, 이 중용을 통하여 이성과 신앙 간의 조화와 균형을 추구함으로써 과학과 기술을 배척하지 않고 수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의회를 통해 평신도를 파트너로 받아들여 성직자와 평신도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치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님의 사제를 독신남성만의 독점이 아닌 결혼한 사람, 여성에게도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구원의 보편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중용의 정신을 가지고 균형과 회복이 간절히 필요한 이 지역에서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비단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뿐만 아니라 자연환경 역시 인간의 탐욕으로 균형이 깨져서 생태적인 평화도 간절히 바라는 오늘날입니다. 어쩌면 우리시대는 이러한 균형과 회복을 위해 진통을 겪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진통을 겪으면서 우리시대의 징표를 읽고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간절히 청합시다. 그리고 균형을 잃은 인간과 자연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 주님의 마음을 함께 느끼면서, 주님의 구원섭리에 동참할 수 있는 용기를 청합시다. 특별히 우리 신앙이 갖고 있는 중용의 덕목으로 우리를 꾸준히 성숙시켜 갑시다.

우리민족에게 해방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우리를 평화의 사도로 부르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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