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내침과 다가감 (요한 5:1-9)
작성일 : 2019-05-26       클릭 : 412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0190526 성서와 함께>

 

내침과 다가감 (요한 5:1-9)

 

이경래 베드로 사제(교무원 총무국장)

 

‘Excommunicatio'라는 말이 있습니다. ’파문‘, ’제명‘, ’추방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 말은 주로 교회법에서 쓰는 용어인데 핵심적인 종교교리를 위배하거나 중대한 범죄를 범했을 경우, 교회가 집행하는 모든 성사에서 배제됨은 물론 심지어 교회 공동체로부터 추방을 의미합니다. 중세 유럽에서 파문은 단지 교회 공동체로부터 추방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과 심지어 죽음이후의 세계로부터도 쫓겨나는 실로 무시무시한 형벌이었습니다.

이 형벌은 성서에도 나옵니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에 대하여 야훼 하느님이 내리신 준엄한 심판입니다. 야훼께서 다음과 같이 심판하십니다: “너는 저주를 받은 몸이니 이 땅에서 물러나야 한다. 네가 아무리 애써 땅을 갈아도 이 땅은 더 이상 소출을 내 주지 않을 것이다. 너는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될 것이다.” 이에 카인은 하느님께 하소연 합니다: “벌이 너무 무거워서, 저로서는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오늘 이 땅에서 저를 아주 쫓아내시니, 저는 이제 하느님을 뵙지 못하고 세상을 떠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저를 만나는 사람마다 저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창세4:11-15)

오늘날도 일부 교단에서 교리를 위배한 성직자와 신자들의 종교적 권리를 제한하기 위해 이 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과거에 비해서 그 위력이 많이 약화된 것은 사실입니다. 오히려 이 말은 이제 교회보다는 사회나 국제정치질서에서 더 가공할 힘을 떨치고 있습니다. 예컨대, 이른바 왕따현상은 학교나 직장사회가 특정인을 따돌림으로써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심지어 죽음으로 내모는 전형적인 파문이라 하겠습니다. 또한 강대국이 특정한 약소국을 국제질서로부터 철저히 고립시켜 약소국 국민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도 파문의 무서운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이처럼 파문은 그 형태를 바꿔가며 여전히 인간을 공동체로부터 소외시키고 비참하게 만듭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삼십팔 년이나 앓고 있는 병자도 공동체로부터 철저히 추방된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베짜타 못가에서 물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이 있지만, 그는 아무도 도와줄 이가 없어서 다른 사람들이 낫는 것을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삼십팔 년 동안 그 누구도 말을 건네고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없는 그야말로 공동체로부터 추방된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께서 다가오셔서 말을 건네십니다: “낫기를 원하느냐?” 그러자 그 병자는 절절하게 자신의 아픈 심정을 하소연합니다: “선생님, 저에겐 물이 움직여도 물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 혼자 가는 동안에 딴 사람이 먼저 못에 들어갑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엔 공동체로부터 추방된 존재, 그래서 아무도 기억해 주지도, 관심을 주지도 않는 투명한 존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살림살이가 예전에 비해 더 각박해지다 보니 예전보다 더 인심이 야박해진 것 같습니다. 모두들 어렇게 말합니다: “내 코가 석자라고.” 그러나 보니, 우리가 의도했던 의도치 않았던 간에 우리 주위엔 점점 공동체로부터 파문당하고 추방당하게 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비단 사람들만 그런 게 아니라 국가들과 거기 살고 있는 국민들도 그런 것 같습니다. 예수님처럼 주위를 돌아보고 다가와서 낫기를 원하나요?”하고 물어보고 그들의 하소연을 들어줄 마음의 여유를 잃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베짜다 못가의 병자는 어쩌면 우리의 자화상일지도 모릅니다. 서로 못에 들어가서 나아보려고 악다구니를 쓰는 거친 세파 속에서 때론 우리는 낙오되고 추방되어져 예수님이 건네는 위로의 말씀을 갈구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만일, 그 병자처럼 예수님을 만나서 위로를 받고 힘을 얻어 일어났다면 이제 우리도 예수님처럼 주위에 앓아 누워있는 고독한 사람, 고립된 나라의 국민에게 다가가면 어떨까요? 그럴 때 파문과 추방은 사라지고 새로운 힘과 연대의 기적이 되살아 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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