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12일 오늘의 말씀: 예수께서 “마리아야!”라고 부르시자 마리아는 예수께 돌아서서 “라뽀니”하고 불렀다. 오늘의 묵상: 사랑하면 만나리라! 영원한 벌에 대한 공포심과 양심의 가책은 종교를 믿게 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은 두려움, 경외감을 초월하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저는 오늘 복음에서 이 사랑을 느낍니다. 그 사랑이란 바로 ‘임에 대한 사랑’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부활하신 예수님이 만나는 장면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갈망하는 우리 신앙의 정수인 ‘사랑’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의 시신을 살피러 무덤에 갔습니다. 그런데 무덤이 열려있고 예수님의 시신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사실을 제자들에게 알렸고 베드로와 요한이 와서 보고 확인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존경하고 사모했던 마리아는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천사가 와서 말을 해도 심지어 예수께서 와서 말을 건네도 알지 못한 채 그녀는 자신의 애통한 심정을 호소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께서 “마리아야!”하고 부르시자 그제야 그녀는 그 분이 예수님인지 알게 돼서 “라뽀니(선생님)”하고 반갑게 대답했습니다. “마리아야!”라는 부르심과 “라뽀니”라는 대답은 아마도 예수님과 마리아 간에 평소에 늘 주고받던 호칭이었으며, 그 속엔 사랑의 감정이 담긴 소통의 표시였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앞에 오고 간 말 속에선 전혀 인지 못했다가 가장 원초적인 이 “마리아야”라는 단순한 말 한마디에 단박에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 감사성찬례 예문에도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라는 구절이 있듯이, 주님을 아는 것은 복잡한 것이 아닌 “마리아야”라는 한마디에 알아차리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가 이 경지에 단숨에 도달한 것은 아닐 겁니다. 예수님을 처음 영접하고 그 분을 따라다니며 그분의 목소리, 그분의 말씀, 그분의 행동을 곁에서 보고, 배우고 하는 숙성의 기간이 있었기에 “마리아야”라는 한 마디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간절히 찾은 마리아의 심정처럼 저도 그 간절함, 그 절절한 사랑을 갖고 싶습니다. 주님이 제 이름을 부르고 제가 주님을 알아보고 기뻐할 수 있는 그 은총을 간구합니다. 부활절 아침, 당신을 그리워하며 당신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오늘의 기도: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이, 내 영혼이 주님을 그리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