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06 다해 사순 제1주일 신명 26:1-11 / 로마 10:8-13 / 루가 4:1-13 광야에서 살아남기 성경에서 ‘광야(廣野)’라는 말은 시련과 고난이란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나 단지 힘들다는 것에만 머물지 않고, 그 시련을 통해 성장과 성숙 그리고 마침내 해방이라는 희망을 함축하기도 합니다.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히브리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 40년간 시나이 광야생활을 한 것 하며, 예수님께서 공생활 하시기 전에 40일간 광야에서 단식하신 것이 가장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광야의 메시지는 비단 성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작품에도 있습니다. 저는 ‘광야’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을 한 저항시인 이육사의 “광야”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이 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 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조국광복의 꿈을 안고 중국대륙을 방랑하던 무렵 시인은 흰 눈으로 덮인 드넓은 중국의 광야를 보면서 일제치하에서 고난 받고 있는 조국의 현실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머지않아 봄이 올 들판을 기대하며 해방을 맞이할 민족의 희망을 노래하였습니다. 이처럼 광야는 종교적으로도 문학적으로도 많은 영감을 주는 곳입니다. 그렇지만 광야자체만 놓고 보면 그 곳은 생물이 생존하기에 매우 불리한 척박한 자연환경입니다. 그래서 광야에 사는 식물이나 동물은 건조하고 극심한 일교차에 살아남기 위해 잎을 가시처럼 최대한 줄이거나, 한 번에 먹이를 포획하기 위해 맹독을 품는 형태로 적응합니다. 그러한 조건을 갖추지 못하면 생존하기 어렵기 때문에 광야는 다른 지역에 비해 생물이 상대적으로 적으며, 사람이 살기에도 적합하지 않은 그야말로 적막하고 고립된 곳입니다. 사람들은 인생이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이러한 광야의 특성에 빗대어 말하곤 합니다. 집단에서 배척받아 겉도는 사람들은 ‘야인(野人)’이라고 하듯이, 광야는 경제적으로 내핍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어려울 때, 사람들과 관계가 단절되어 고독한 상태일 때를 뜻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늙어서 거동이 불편한 쇠약한 몸으로 고통 받고 있는 노년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육체적, 물질적, 심리적으로 위축된 황량한 상태에서 인간은 평소에 알지 못하던 감정을 느끼고, 어떤 경우에는 의식 깊이 감추어져 있는 욕망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특별히, 사막에서 기도와 금욕생활을 했던 은수자와 수도자들은 이러한 감추어져있는 욕망을 알아차리고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더욱 깊이 이해하였습니다. 그리스도교 영성전통에선 이것을 '유혹(temptation)'이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은 예수님께서 받으신 그 유명한 3대 유혹이야기입니다. 3가지 유혹이란 빵의 유혹, 권력의 유혹, 그리고 거짓기적의 유혹입니다. 먼저, 빵의 유혹입니다. 이것은 생명유지를 위한 가장 원초적인 유혹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먹는 것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일용할 양식을 충족하는 것을 너머서 물질에 대한 끝없는 탐욕으로까지 빠져드는 유혹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권력의 유혹입니다. 이것은 인정받고 싶고 존경받고 싶은 인간심리를 건드리는 유혹입니다. 그러나 단지 인정받고 존경받고 싶은 차원을 너머서 사람들을 지배하고자 하는 독재로 변질되는 유혹이라고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거짓기적에 대한 유혹입니다. 특별히 이 유혹은 종교인이나 연예인 등이 빠지기 쉬운 유혹입니다. 뭔가 남들과 다른 특별한 재능과 능력으로 주목받고 성공하고 싶은 유혹입니다. 그러나 이 유혹의 끝은 초심을 잃고 자기중심적인 이기적인 인간으로 탈선하는 유혹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광야에서 왜 이런 3가지 유혹을 받으신 걸까요? 복음은 여기에 대해 일종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기력이 몹시 쇠약해 지셨다는 것입니다. 성서는 예수님이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서 사십 일이 지났을 때에는 몹시 허기지셨다(루가 4:2)”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암시는 마태오 복음에 나오는 데 예수님께서 악마의 시험을 물리치시자 “천사들이 와서 시중들었다(마태 4:11)”란 구절에서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오랫동안 금식하셔서 육적으로도 매우 쇠약한 상태였으며, 영적으로도 악마의 유혹에 노출될 만큼 '격리(quarantine)'되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이 광야에서 받은 유혹 이야기가 알려주는 바는 악마 혹은 악의 세력이란 인간이 육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취약해져 있을 때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 취약함이란 바로 ‘격리’ 혹은 ‘고독’의 상태입니다. 원래 인간은 먹을 것을 통하여 세상의 물질과 연결되어 생명을 유지합니다. 또한 인간은 정신적 존재들과 연결함으로서 사회화되며, 궁극적으로는 하느님과 연결함으로써 영적존재로 생명력을 갖습니다. 이러한 인간에게 광야는 바로 육적으로나 영적으로나 모두 단절되고 격리된 인간의 나약함이 그대로 노출된 상태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유혹 이야기에서 보듯이 악마는 집요하게 성부 하느님과 예수님을 갈라놓으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예수님은 “사람이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떠보지 말라”,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하시며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고 끝까지 성부 하느님과 연대(solidarity)와 일치(unity)를 유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은 우리 신앙인이 어떻게 유혹을 극복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오늘 제2독서 사도바울께서 “말씀은 네 바로 곁에 있고 네 입에 네 마음에 있다(로마 10:8)”는 것을 믿고 살아가라는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럴 때만이 우리들은 광야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지난 수요일 재의 예식 때 이마에 재를 바르며, 우리는 “인생아, 기억하라. 그대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라는 말씀을 듣고 묵상했습니다. 사실, 과학기술이 발달한 오늘날 우리는 흙에서 나온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자주 망각하고 삽니다. 왜냐하면, 자동차는 우리의 발이 되고, 핸드폰은 우리의 입과 귀가 되고, 컴퓨터는 우리의 두뇌가 되어 생각하는 대로 우리생활을 무한대로 확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의 수요일로 사순절을 시작하며 첫 번째로 맞이하는 사순1주일. 광야는 우리에게 인간의 유한함과 약함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사실 인간의 “인생은 기껏해야 칠십 년, 근력이 좋아야 팔십 년, 그나마 거의가 고생과 슬픔에 젖은 것, 날아가듯 덧없이 사라지고 만다(시편 90:10)”고 묘사한 시편저자의 노래처럼 온갖 희로애락으로 점철되는 유한한 인생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정신, 우리의 영혼은 그와 정반대로 무한을 지향합니다. 이처럼 유한한 몸에 무한한 영혼이 결합된 모순된 존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비극으로 몰아넣는 것은 무한한 것을 유한한 나와 이 세상 안에서 찾으려는 것입니다. 예컨대, 배고플 때 음식을 먹지만, 그것이 일시적인 것입니다. 권력과 명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일정한 역할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그에 합당한 지위와 힘이 필요하지만, 세월이 흘러 때가 되면 그 역할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줘야 합니다. 그것이 순리입니다. 만약 순리를 거스르면 나와 타인들이 불행하게 됩니다. 이렇게 유한한 것을 무한한 것으로 착각할 때 우리 인생은 불행해 집니다. 신앙인들은 광야에서 악마의 유혹을 이겨내신 예수님처럼 무한함의 근거를 하느님께 둬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혼은 하느님에게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간존재에 대하여 성 어거스틴은 자신의 저서 『고백록』에서 “임 안에서 쉬기까지 우리마음이 찹찹하지 않삽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 안에 뿌리를 굳게 내릴 때만이 황량하고 건조하며 고립된 인생의 광야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제1독서에서 들은 히브리백성들처럼 시나이 광야를 지나 야훼 하느님께서 유산으로 받은 땅에 들어가 하느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며 주님이 주신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순 첫 주일! 우리는 광야에서 유혹을 이겨내신 예수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신앙, 우리의 존재가 하느님과 굳게 연결될 때만이 온갖 유혹과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고, 하느님과 좀 더 일치하는 길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우리를 유혹으로부터 지켜주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