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부활의 은총으로서의 회심(다해 부활3주일)
작성일 : 2022-05-01       클릭 : 334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20501 다해 부활3주일

사도 9:1-6 / 묵시 5:11-14 / 요한 21:1-19

 

 

부활의 은총으로서의 회심

 

 

전통적으로 교회는 베드로와 바울 성인을 교회의 두 기둥이라고 합니다. 강화도에 처음으로 교회를 설립한 우리교회도 이런 맥락에서 이 두 분을 수호성인으로 삼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바로 베드로와 바울의 이야기, 특별히 부활하신 예수님과 만난 사건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두 분의 인생에서 아마도 전환점과 같은 이야기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면,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회상합니다. 거기에는 기쁜 일, 즐거운 일도 있지만, 슬프고 아쉽고 후회스러운 일도 있을 겁니다. 그 중에서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 가장 인상적인 인생의 중요한 기억을 떠올릴 것입니다. 저는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에 대하여 묵상하면서 이 분들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생각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전승에 의하면, 베드로 사도는 네로황제의 박해 때 붙잡혀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순교했다고 하고, 사도 바울 역시 베드로와 비슷한 시기인 67년경 네로황제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할 때 붙잡혀 로마 서쪽 성문 밖에서 참수를 당했습니다. 바울이 참수당할 때, 그의 목을 받쳤던 돌과 참수당한 그의 목이 세 번 뛰었던 곳마다 샘이 솟았다는 트레 폰타네(Tre Fontane)’가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분들의 마지막을 관상하면서 처형당하기 직전, 자신이 걸어 온 전 생애를 돌아보면서 제일 강렬하게 회상했던 것은 아마도 예수님과 만난 기억, 그중에서도 자신의 전 존재, 자신의 인생방향이 완전히 전환된 결정적 만남의 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성경말씀이 바로 그 대목입니다. 왜냐하면 복음과 사도행전이 집필된 연대가 사도 베드로와 바울 사후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이 글을 집필한 루가저자는 늙은 베드로와 바울로부터 예수님을 통해 자신들이 어떻게 인생이 변화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몸 된 교회를 어떻게 헌신해 왔는지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해 듣고서 후세에 이 감동을 전하기 위해 글을 쓴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들은 이 이야기는 인생의 마지막에 서 있는 위대한 두 사도가 부활한 예수님과 만난 사건을 체험하고 살아가면서 그 의미를 곰곰이 숙고하고, 기도하고, 성찰한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저 두 사람이 부활한 예수님을 이렇게 만났구나 하는 정보를 듣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인생의 방향이 전환된 결정적 '회심(Metanoia)'이자, 자신을 온전히 투신한 인생이 담긴 '신앙고백'으로 함께 느껴보길 권합니다. 이제 두 분의 회심이자, 신앙고백 사건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사도 베드로와 예수님의 만남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처형되신 후, 베드로와 제자들은 낙향하여 어부생활로 돌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예전 어느 때처럼 밤새도록 애를 썼으나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습니다. 동틀 무렵, 호숫가에 서 있던 어떤 이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 보라고 합니다. 그의 말대로 했더니 과연 엄청난 고기를 낚았습니다. “이게 뭐지? 3년 전 그때랑 너무도 똑 같잖아!” 베드로는 내심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때 요한이 소리쳤습니다: 저 분은 주님이십니다(요한 21:7)” 그러자 성질 급한 베드로는 너무 기쁜 나머지 물에 뛰어들어 정신없이 헤엄쳐 예수께 갑니다. 3년 전, 오늘과 똑같은 상황에서 부르셨을 때, 잔뜩 겁을 먹고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루가 5:8)”라고 손사래를 쳤던 베드로는 이제 설레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다가갑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변하게 한 것일까요? 그는 스승 예수님과 3년을 동고동락하면서 스승님의 인품과 행적에 깊이 감화되어 스승님과 끝까지 함께 있을 거라고 다짐했지만, 스승님이 잡혀가서 십자가에 처형되었을 때, 허물어진 자신의 나약한 모습에 심한 환멸감을 느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스승님을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내 인간적인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스승님을 사랑했노라고 고백하고 싶었을 겁니다. 그런 베드로의 복잡한 심경을 아시는 예수님은 음식을 함께 나누자고 초대하시고, 함께 음식을 먹으며 친교를 나누신 다음,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십니다. 예수님의 이 물음은 그를 질책하시거나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상처나고 분열된 베드로의 마음과 영혼을 치유하고 하나로 통합시켜 주시는 회심으로의 초대인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께서는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요한 21:17)”라고 대답하자, 주님은 그에게 당신의 양떼를 돌보라고 선교와 사목의 권능을 건네주십니다.

3년 전, 갈릴리 호숫가 뱃사람을 처음 부르신 것이 첫 번째 회심이라면,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깃털처럼 가벼운 존재인지 처절하게 통감한 베드로를 사랑으로 다시 일으켜 세운 오늘 이야기가 두 번째 회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를 통해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는 선교사로 그리고 주님의 양떼를 돌보는 목자로 불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사도 바울과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유대교의 열렬한 신봉자인 사울은 다마스쿠스에 있는 예수쟁이들을 잡으러 가다가, 길에서 강렬한 빛 속에 휩싸입니다. 그리고 그 빛 한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충격적인 만남을 겪고 사울은 눈이 멀어 주변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아나니아라는 예수쟁이 집에 머뭅니다. 이 첫 번째 사건으로 바울의 인생은 180도 바뀌게 됩니다. 그리스도교 영성에서 말하는 회심의 가장 전형적인 모델이 바로 사도바울의 회심입니다. 왜냐하면, 희랍어로 메타노이아(μετάνοια)’사고방식의 전환혹은 되돌아옴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로 사도바울의 회심은 바울이 그리스도인을 박해한 죄를 회개했다는 윤리적 회개도 아니고, 자신의 이념이나 신념을 바꾸는 사상의 개조도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만났을 때 눈이 멀 정도로 충격적이었지만 아직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한 신비스러운 만남이자, 회심으로의 초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후 오랫동안 기도와 묵상을 통해 이 신비를 차츰차츰 깨우쳤습니다. 신약성서에서 사도바울이 여러 교회 공동체에 쓴 편지를 통하여 우리는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가고 깨우친 내용을 전해 듣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도바울은 우리 교회의 위대한 영성가이자 신학자이자 선교사인 것입니다.

율법을 지킴으로써 조금도 흠이 없던 사도 바울은 회심 후,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나에게 유익했던 이런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장애물로 여겼습니다.(필립 3:7)” 다시 말해, 부활하신 예수님과 만난 후, 자신에 대한 전체적인 재평가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전에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 이제는 모두 소용없는 무()로 돌아갔고, 관심도 없어졌습니다. 전에는 포기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을 이제는 쓰레기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를 아는 것만이 어떤 것보다도 우선적이고 절대적인 것이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회심을 통하여 참으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지난 주일에 우리는 토마 이야기를 통해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깨어진 신뢰를 치유해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사도 바울과 베드로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부활의 은총이 우리를 회심으로 초대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부활은 우리가 살아가는 지형을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바꿉니다. 동시에 이것은 마침표가 아닙니다. 오히려 새로운 시작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이 만남으로 양떼를 돌보는 목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바울은 이 만남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듯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은총은 우리 개개인의 인생과 우리교회의 길을 새롭게 창조하십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와 바울의 인생 고비에서 기다렸듯이 어쩌면 부활하신 주님은 여러분 인생의 어떤 지점에서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여러분이 베드로처럼 인생의 파고 속에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고 낙담하고 있을 때, 아니면 사도바울처럼 쟁취하고픈 인생의 길을 향해 맹렬하게 걷고 있을 때, 주님은 거기서 다음과 같이 말하실 것입니다: “뭘 좀 잡았습니까?”, “나는 당신이 박해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를 회심으로 초대하시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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