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그리스도인의 명절(추석)
작성일 : 2022-09-10       클릭 : 20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20910 추석

요엘 2:21-24, 26 / 1요한 3:17-18 / 마태 25:34-40

 

 

그리스도인의 명절


우리는 모두 기독교인이면서 동아시아에 살고 있는 한국인입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있는 두 개의 정체성은 추석이나 설날과 같은 때가 오면 종종 충돌이 일어나곤 합니다. 기독교인이 먼저냐, 아니면 한국인이 먼저냐, 하느님의 계시는 오직 기독교에만 있는 건가, 기독교도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정녕 아무런 계시가 없는 것일까, 등등. 이점에 대하여 저는 아테네에서 전도한 사도바울의 말씀(사도17:16-34 참조)을 바탕으로 우리의 전통명절에 대한 기독교인의 태도에 대하여 두 가지 측면에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명절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제사입니다. 세상의 민족들은 저마다 전해져 내려오는 고유의 명절이 있습니다. 기독교 전례력의 기원이 되는 유대종교는 세 개의 명절-유월절(과월절), 맥추절(오순절), 초막절(추수감사절)-이 있습니다. 유월절은 역사적인 명절이고, 맥추절과 초막절은 추수와 관련된 명절입니다. 역사적 명절인 유월절은 유대인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것을 기념하는 제사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시기가 바로 유월절기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선 유월절이 부활절이 된 것입니다. 다음으로 추수와 관련된 명절 중 맥추절은 보리수확을 감사하는 절기인데, 유월절로부터 50일이 지난 뒤에 있다고 해서, 오순절이라고도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 때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기독교에선 오순절을 교회의 창립일인 성령강림절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을철 추수를 감사하는 추수감사절이 있는데, 이 때 유대인들이 바쁜 추수로 인해 야외에 임시로 초막에 거처한다고 해서 초막절이라고 부릅니다. 더욱이 추수감사절은 17세기 유럽인들이 미국대륙으로 건너가서 첫 수확을 얻은 것에 감사드린 이후 미국 기독교의 명절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서구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유대-기독교 전통에서 우리에게 양식을 수확하게 해 주신 하느님에 대한 감사와 찬미 그리고 친교의 예배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우리 동양의 전통 안에서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敬天爱人’(경천애인)이란 말에서 보듯이, 초월자를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정신은 동아시아인들의 기본 심성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 ‘의 두 글자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효는 나를 있게 해 주신 조상에 대한 감사의 예배이고, 경은 인간에게 먹을 것을 내려주시는 신에 대한 감사의 예배입니다. 그런데, 효와 경 중에서 일반백성은 효의 예배만 할 수 있고, 오직 임금만이 경의 예배를 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고대중국에선 임금을 하늘의 아들, 天子라고 해서 천자만이 하늘에 감사와 간구의 제사를 지낼 수 있었습니다. 천자가 신에게 제사지낸 곳인 북경의 天坛(천단)은 그 대표적인 유적입니다.

이처럼 유대인이나 동아시아인이나 모두 일용할 양식을 내려주신 신에게 감사드리고 그 기쁨을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제사와 축제는 모든 인간의 본질적인 특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 역시 이러한 인간의 근원적인 특징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기독교인은 이보다 한발 더 성숙한 차원으로 명절을 올립니다. 그 특징이란 바로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이라는 보편성과 평등성입니다. 유대교의 제사는 대사제만이 거행하고, 일반인들은 기껏해야 약식 가족예배만 할 수 있습니다. 유가의 영향을 받은 동양의 제사는 천자만이 신에게 드릴 수 있으며, 일반인들은 가장을 중심으로 기껏 조상에게만 제사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제사인 예배는 유일한 대제사장인 예수 그리스도의 단 한 번의 희생제사를 통해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누구나 참여해서 하느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약의 제사와 동아시아전통에서의 제사에선 하느님과 인간이 너무나 멀리 있었지만, 기독교의 제사에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하느님과 인간이 가까이 있게 된 것입니다. 동아시아 전통에서의 제사에선 일반인들이 단지 조상께만 감사를 드렸다면, 기독교의 제사에선 하느님 안에서 조상뿐 아니라, 모든 죽은 이들이 살아있는 우리들과 함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명절은 친교와 축제입니다. 제사가 인간과 조상, 인간과 신간의 초월적이고 수직적 차원이라면, 축제는 명절을 보내는 이들 간의 수평적 차원입니다. 구약의 유월절에서 유대인들은 빵과 포도주를 나눠 마시면서, 에집트에서 해방된 기쁨을 기념하고 함께 그 즐거움을 나눕니다. 동아시아의 제사에선 신 혹은 조상에게 바친 음식을 식구들과 이웃들과 나눠 먹습니다. 이러한 나눔의 기쁨은 우리 기독교인 역시 매우 소중하게 다뤄야 할 가치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에는 경건만 있는 것이 아니라 환희와 기쁨, 즐거움과 유쾌함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축제를 즐길 때, 우리 기독교인들이 특별히 더 관심을 가져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독서에서 들었듯이, 어려운 이웃형제자매에 대한 사랑(1요한3:17-18)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모든 이들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일가친척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친교를 나누는 추석명절에 우리 크리스챤들은 친척들 중에서 물질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어려운 이들에게 더 각별한 관심을 갖고 따뜻한 말 한마디, 자그마한 관심과 도움을 주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하느님의 나라는 어떤 의미에서 인류가 꿈꾸는 명절의 이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의 제사가 드려지고, 모든 사람들이 어느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모두가 행복하고 즐거운 축제가 벌어지는 곳이 하느님나라인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그러한 하느님나라를 향해 가는 순례의 공동체입니다.

추석명절을 맞아 모처럼 만나는 일가친척과 함께 드리는 제사와 친교에 참여하실 때, 여러분 모두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서 기독교인의 사랑을 말과 행동으로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믿지 않는 이웃과 친척은 우리의 이런 모습을 보고 하느님의 넉넉하심과 자애로우심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 하느님은 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불러주시는 은총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주님의 축복의 통로요, 은총의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을 주관하시고 우리에게 수확의 선물을 주시는 창조주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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