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제자들의 덕목(다해 연중27주일)
작성일 : 2022-10-02       클릭 : 204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21002 다해 연중27주일

애가 1:1-6 / 2디모 1:1-14 / 루가 17:5-10

 

 

제자들의 덕목(德目)

 

여러분은 겨자씨(mustard seed)를 보신 적이 있나요? 신학생 시절 신약학을 배울 때, 하루는 교수신부님이 자그마한 투명 통을 갖고 오셔서 이스라엘에서 가져오신 겨자씨라며 보여주셨던 적이 있습니다. 좁쌀과 깨 정도의 크기로 아주 작은 씨앗인데, 다 자라면 높이가 2~4미터 가량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을 읽으면서 이렇게 작디작은 씨앗이 그렇게 커다랗고 풍성하게 자란다는 것에 신기해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믿음의 힘과 종의 의무에 대하여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은 오늘복음 앞부분인 171절부터 시작합니다. 이것은 남을 죄짓게 하지 말라는 것과 용서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말씀하신 것은 모두 4가지입니다.

4가지 덕목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남을 죄짓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죄악의 유혹이 없을 수 없지만 남을 죄짓게 하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하다(루가 17:1)” 여기서 죄짓게 하다라는 성경원어인 그리스어 스칸달라(σκνδαλα)혹은 걸림돌이란 의미입니다. 이 뜻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람들을 하느님께 인도해야지, 반대로 하느님께 나아가는데 걸림돌이 되거나 훼방꾼 심지어 덫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신앙의 모범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둘째, 회개하는 형제자매를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형제가 잘못을 저지르거든 꾸짖고 뉘우치거든 용서해 주어라.(루가 17:3)”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형제는 같은 신앙공동체에 속한 신자들을 가리킵니다. , 교회에서 교인들 사이에 잘못이 발생하여 그것을 권면하고 그 형제가 잘못을 뉘우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일곱 번이나 잘못을 저지른다 해도 그때마다 잘못을 뉘우치면 용서해 주라고 하십니다.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유대교 율법교사들이 이럴 경우 세 번까지만 용서하라고 가르치는 것에 반해 예수님의 가르침은 무한정 용서를 말씀하시니,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실천하기 쉽지 않은 요구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이것은 인간의 힘만으로 도저히 하기 어려운 일임을 느끼고 예수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해 주십시오(루가 17:5)”라고 요청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믿음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예상을 벗어난 말씀을 하십니다. ,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뽕나무가 뿌리째 뽑혀 바다에 그대로 심어질 수 있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유대식 과장법이 가미된 이 말씀을 하신 예수님의 의도는 믿음이 크고 작고,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믿음이 있고 없고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믿음에서 예수님의 능력으로 믿음을 보태달라는 양적인 개념으로 요청했지만, 예수님은 내가 가진 믿음이 참다우면, 설령 그 믿음이 겨자씨처럼 작디작을지라도 큰일을 할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 믿음이란 양적인 개념이 아니라 질적인 개념이란 뜻입니다. 이처럼 믿음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실로 혁명적입니다. 사실, 예수님 시대뿐만 아니라 오늘날도 신앙인들은 믿음이 깊다’, ‘믿음이 얕다등 수량적인 말로 측정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결단 앞에서 우리는 그 수량이 많고 적음이 무의미할 때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예컨대, 오랜 신앙생활을 하신 신자분이 인생을 살면서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마음의 응어리로 인해 힘들어 하시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후, 지나온 잘못된 삶을 회개하고 변화하는 사람을 볼 때면 회개하고 용서하는 것이 나의 꾸준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결정적으로는 하느님의 은총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예배 때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라는 응답은 겨자씨만한 믿음의 은총으로 나를 변화시켜 달라는 우리들의 간절한 기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겸손과 섬김에 대해서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사회현상인 주인과 종의 비유를 들어 봉사하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자세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말씀이 계약을 통해 노동시간이 보장되고 임금이 정해지는 오늘날 우리들의 관념으론 좀 이상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비유의 의도는 제자들이 제자직을 수행했다고 해서 보상을 바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임무를 완수하고 나서 언제나 겸손한 자세를 지녀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인과응보(因果應報)사상에 젖어있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 그리고 그런 신앙을 가진 이스라엘사람들을 상대로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은 세상의 거래와 같이 주고받는 방식이 아니다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네 가지 덕목을 통하여 루가복음 저자는 제자들이 보잘껏 없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혹은 죄지은 형제자매를 무한정 용서하는 일을 잘 수행했다 하더라도, 또는 믿음을 가지고 큰 능력을 발휘했다 하더라고, 그것이 하느님 앞에 특별한 공덕이나 자랑거리가 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의 무한하신 자비와 사랑과 은총 앞에 우리가 많고 적음, 높고 낮음을 내세운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믿음을 가지고 행할 때 우리는 이미 하느님의 무한하신 품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저를 포함하여 우리 모두는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들려주신 네 가지 덕목은 동시에 우리들이 유념해야 할 덕목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오늘은 우리교회를 위해 봉사할 일꾼들이 세워지는 날입니다. 예배 때 마다 우리는 서로 다르나 한빵을 나누며 한몸을 이룹니다라고 고백하듯이, 오늘 세워지는 교회일꾼들은 연령도, 성별도, 나이도, 경험도, 성격도 다르지만 주님 안에서 그리고 주님의 교회 안에서 하나의 제자로 불림 받은 분들입니다. 그러기에 거기에는 높고 낮음, 많고 적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모두 겨자씨만한 자그마한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다시 말해 믿음의 크기, 인기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예수님과 교회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있다는 그 자체가 중요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는 12사도를 세우실 때, 그 전에 어부로 살았던, 세리로 살았던, 아니면 학식이 있었던 것으로 12사도들을 우열 짓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한 21:17)”라는 말씀으로 12사도를 평등하고 우애 넘친 당신의 제자집단으로 삼으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 역시 사도바울이 자신의 동역자이자 아끼는 제자 디모데오에게 쓴 편지를 썼던 심정으로 새로 세워지는 우리교회 일꾼들에게 축복과 기도의 말씀으로 오늘 설교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하느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나 바울로는 아들같이 사랑하는 디모테오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는 자에게 생명을 주시기로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선포하는 사명을 나에게 맡기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께서 은총과 자비와 평화를 그대에게 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밤낮으로 기도할 때마다 그대를 기억하면서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2디모 1:1-3)”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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