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기도의 내적자세(다해 연중30주일)
작성일 : 2022-10-23       클릭 : 180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21023 다해 연중30주일

요엘 2:23-3:5 / 2디모 4:6-8, 16-18 / 루가 18:9-14

 

 

기도의 내적자세

 

지난주일 복음에 이어 이번 주일 복음도 기도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가장 필요한 두 가지 내적태도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지난 주일에 우리가 들었던 끈질기게 불의한 재판관을 졸라서 억울함을 푼 과부가 지닌 불굴의 의지입니다. 그리고 이 의지가 나오는 내적인 힘은 바로 하느님을 향한 굳건한 믿음과 희망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중요한 내적자세는 오늘 방금 들은 복음에 나오는 겸손함입니다. 예수님은 겸손한 기도를 가르치기 위해 세리와 바리사이파 사람이 서로 상반되게 기도하는 비유이야기를 하신 뒤에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면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면 높아질 것이다.(루가 18:9-14)”란 말씀으로 마무리하십니다.

보수가 많거나 적거나 혹은 근무환경이 편하고 불편함에 따라 각자의 호불호가 다르겠지만, 오늘날에는 직업엔 귀천이 없다는 사회적 약속에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사회는 인간은 그가 어떤 직업에 종사하던지 간에 모두가 존중받아야할 존재라는 민주주의 이념이 작동하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보다 못한 직업을 가진 사람을 깔보고 무시하거나, 심지어 무례한 말과 행동을 한 것이 밝혀질 경우, 그런 사람은 사회적 비난과 지탄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그렇지만 고대사회는 오늘날 평등성을 강조하는 민주사회와는 달리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으며, 그래서 직업도 신분과 연동이 되어서, 어떤 직업을 갖는지에 따라 그가 존중받아야할 사람인지, 아니면 지탄받아야 할 사람인지 구분되었습니다.

이런 맥락 하에 예수님 시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바리사이는 율법을 잘 지키는 의인으로 대접받았고, ‘세리는 율법 밖에 사는 죄인으로 멸시받았습니다. 그러기에 그 사람이 아무리 성품이 착하다 하더라도 그의 직업이 세리일 경우, 직업상 그는 죄인으로 취급받고 업신여김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느 정도 경제적 자립을 할 여력이 있으면, 존경받는 바리사이나 율법학자와 같은 지식인 직업을 하려고 했지, 세리 같은 손가락질 받는 직업은 가급적 피하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사회풍토 속에서 세리가 되었다는 것은 그가 가정형편이 궁핍해서 세리라는 직업이라도 가져서 먹고살지 않으면 안되었거나, 아니면 기왕에 사람들한테 “‘로마의 앞잡이’, ‘수전노라고 따돌림 당하느니, 괜스레 사람들로부터 호감 받으려고 애쓰지 말고, 눈 딱 감고 악착같이 돈이나 벌어야지하는 독한 마음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리는 설령 그가 돈을 좀 벌었다고 하더라도, 이스라엘 사회집단에 낄 수 없는 이방인이자 영원한 아웃사이더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예수께서 들려주신 두 사람의 상반된 기도자세는 바로 이러한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대교는 보통 하루에 두 번, 오전9시와 오후3시에 성전에서 기도시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 꼿꼿이 서서 하늘을 우러러 기도합니다. 바리사이파 사람은 아마도 이러한 모습으로 기도했을 것입니다. 이에 반해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해 눈을 들지도 못한 채 가슴을 치며 기도합니다. 굉장히 위축된 모습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그가 세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일반 유대인 남자들이 기도하는 구역에 당당히 못 들어가거나, 설령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남들 눈에 띨까봐 고개도 푹 숙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좀 상상력을 발휘해 본다면, 이 세리가 하느님께 기도하러 성전에 들어왔을 때, 아마도 사람들은 저 놈 봐라. 세리주제에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들어와서 기도한단 말인가!”라고 수군거리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 못지않게, 세리 역시 내적으로 자신이 로마제국의 세금징수원으로 일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하느님 앞에 송구스럽고 심적으로 심한 죄책감을 갖고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는 가슴을 치며 오 하느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가 18:13)”라고 통회의 기도를 합니다. 그의 이러한 기도는 자신의 행실을 묵인해달라는 일종의 면죄부를 요구하는 얄팍한 기도가 아닙니다. 어쩌면 그는 먹고 살기 위해서 남들이 비난하는 그런 부정한 직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직업 활동으로 식민지 정권의 지시를 수행하며 동족들의 돈을 징수하였고, 때론 동족에게 경제적 피해를 준 것에 대한 깊은 참회가 담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공동번역 성서에서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번역한 그 말을 달리 표현하면 불쌍히 여겨주십시오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 말의 원어인 그리스말 힐라스코마이( ἱλσκομαι)’는 자신이 하느님과 이웃 앞에 의인이 아니라 죄인이며, 그러기에 이런 자신을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겨달라는 애절함의 울림이자, 나아가 이 말은 화해하다라는 뜻도 담겨있습니다. 그러기에 단지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는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제 하느님과 이웃들과 화해하고 싶다는 치유와 구원의 청원기도이기도 합니다.

이에 반해 바리사이의 기도는 외적으로 볼 때, 하늘을 향해 드리지만은 그 기도의 내용이 하느님과 대화라기보다는 자기가 한 일들을 나열하는 일종의 혼잣말 기도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는 하느님 앞에 선 나라는 기도의 가장 기초적인 원칙을 깬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개인기도에서는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가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데, 바리사이의 기도는 남을 의식하고, 남과 비교하는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그리스도교 영성에서는 이것을 분심이라고 합니다. 즉 하느님께 집중하지 못하고 세상 것들로 마음이 분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가 설사 미사여구를 사용하고, 오래 기도한다고 하나, 하느님께 조금도 집중하지 못한 기도를 한 것입니다. 결국 영적으로 볼 때, 하느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충만한 은총을 제대로 받지 못한 자기만족 내지 영적 허영심으로 가득 찬 시간낭비만 한 꼴입니다.

예수님은 이 두 사람의 기도를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영적선물을 받은 사람은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바리사이는 하느님과 대화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대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도란 하느님과 내가 소통(communion)’하는 건데, 하느님이 뭘 주시려고 해도 계속 혼잣말만 하니 받을 수 있는 기회도, 마음의 준비도 전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겸손한 기도란 내 중심적인 기도가 아닙니다. 겸손한 기도를 하기 위해선 우선 나를 비워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럴 때 하느님은 비워진 나에게 오셔서 당신의 은총의 선물로 가득 채워주십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10월 첫 주부터 우리교회는 매 주 수요일 저녁마다 기도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이 모임에서 우리는 기도의 가장 기초적인 단계에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선 내 생각과 감정이 가득 찬 상태에서 곧바로 하느님 말씀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우선 침묵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나를 비워가는 훈련에 집중합니다. 동시에 이러한 기도를 매일매일 꾸준히 그리고 끈질기게 하면서 서서히 기도하는 사람으로 변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느님은 오늘 제1독서 요엘서에서 말씀하신 구절, 나는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의 아들과 딸은 예언을 하고, 늙은이는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리라. …… 그 때 야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마다 구원을 받으리라.(요엘 3:1, 5)”라는 놀라운 하느님의 은총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느님은 남과 비교하려는 마음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비워나가는 겸손의 기도와 끈질긴 과부처럼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기도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놀라운 당신의 영, 즉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이것이 기도가 가져오는 영적열매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를 치유하고 회복시켜 주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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