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순수한 자’의 귀환(다해 연중31주일)
작성일 : 2022-10-30       클릭 : 205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21030 다해 연중31주일

하바 1:1-4, 2:1-4 / 2데살 1:1-4, 11-12 / 루가 19:1-10

 

 

순수한 자의 귀환

 

지난주일 복음에 우리는 세리와 바리사이의 기도에 대하여 들었습니다. 그 내용을 잠깐 상기해 봅시다. 성전에서 두 사람이 기도합니다. 한 사람은 율법을 잘 준수하는 바리사이파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세리라는 부정한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바리사이는 자신이 얼마나 율법을 잘 지키고 있는 의로운 사람인지 기도합니다. 그러나 세리는 하늘을 향해 고개도 못 들고 가슴을 치며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당신과 화해하고 싶습니다라고 기도하며 자신을 뉘우치고 하느님의 자비로운 구원의 손길을 청합니다. 교회는 지난주일 세리의 기도에 이어 이번 주일 예수님과 세리 자캐오의 이야기를 통하여 기도의 결과, 즉 회개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자캐오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천성이 순수한 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캐오라는 이름은 순수한’, ‘의로운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성서는 그러한 그가 왜 세리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는지 설명하진 않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사회정황을 미루어 짐작해 보건데, 아마도 집안 형편이 매우 어려웠거나 아니면 하층신분이었을 겁니다. 이런 사정으로 그는 세리가 되었고, 그것도 세관장이라는 직위까지 승진했으니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양심의 가책으로 갈등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고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심한 소외감과 고독감을 느꼈을 겁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문으로만 듣던 예수님이 예리고를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자캐오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을 겁니다.

참고로 예리고는 팔레스티나 지방에서 가장 기름진 곳 중에 하나였으며, 오늘날 사우디아라비아가 있는 아라비아 반도로부터 오는 외국인들에게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세관이 있는 부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강도도 자주 출몰했던 지역이었습니다.

키가 작은 자캐오는 오직 예수님을 보고 싶은 생각에 체면도 버리고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갑니다. 그렇지만 감히 먼저 말을 붙이지도 못하고, 그저 예수님을 보기만 할 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찬찬히 보면 주목을 끄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보고 싶어 한 사람은 자캐오인데 예수님이 먼저 자캐오를 보시고 그의 이름을 부르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자캐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루가 19:5)” 이 말씀 속에 자캐오를 구원하시려는 예수님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평소에 사람들로부터 멸시 당하던 자캐오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추종을 받고 있는 예수님으로부터 존중과 환대를 받으니 그는 너무 놀랍고 기쁩니다. 그는 얼른 나무에서 내려와 기쁜 마음으로 예수를 자기 집에 모십니다.(루가 19:6)” 성서에는 그가 회개했다는 것을 말로 표현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그가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맞아들인 행동이 바로 구원을 향한 그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지난주일과 이번 주일의 풍경이 너무도 다릅니다. 지난 주일에는 몸을 꼿꼿이 펴고 하늘을 향해 기도했던 바리사이와 몸을 움츠리고 고개를 푹 숙이고 기도했던 세리와 달리 오늘 복음에선 예수님의 말씀에 기뻐하며 주님을 모시는 세리와 저 사람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구나!(루가 19:7)”하며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로 완전히 역전된 모습으로 되었습니다. 마치 성모 마리아가 주님은 전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높이셨다(루가 1: 51, 52)”고 찬양했던 기도가 떠오르는 장면입니다.

자캐오는 회개의 표시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다고 선언합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네 곱절로 갚는 경우는 양을 도둑질했을 경우에 한해서였습니다.(출애 21:37 참조) 이것은 매우 엄청난 배상이라서 예수님 당시에는 보통 손해액수의 오분의 일 정도만 보상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자캐오의 선언은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하라고 외칠 때, 그는 사람들에게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 보여라(루가 3:8)”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자캐오의 선언은 말로 그친 회개가 아닌 행동으로까지 연결한 회개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오늘 이집은 구원을 얻었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루가19:9)”라고 선언하십니다. 이 말씀은 자캐오도 아브라함의 후손인 만큼 구원을 받아 마땅하며, 그 구원도 죽은 다음이 아닌, 그가 참회하고 행동으로 결단한 바로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는 구원의 현재성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는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저 멀리 초월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드리는 주의기도문에 있는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지금 이 자리(Here and Now)’에 구현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 인간을 당신의 모상으로 만드셨을 때, 기뻐하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원초적인 복(Original Blessing)'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살면서 여러 가지 환경과 요소로 인해 점차 순수함이 훼손되고, 마침내 '원초적인 죄(Original Sin)'에 빠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구원이란 원죄(原罪)에 빠진 인간이 원복(原福)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순수한이란 이름 뜻을 가진 자캐오 역시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이제 본연의 순수한 사람으로 귀환하였습니다.

이상으로 오늘 복음은 바로 세관장 자캐오가 구원받은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쓰인 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하여 서부유럽신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큰 기여를 하신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영어이름: Jerome) 성인은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고 했지만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자캐오가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하셨습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모두 자캐오라는 이름처럼 순수한 모습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성장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 순수함을 잊어버리거나 외면하고 살아왔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우리 영혼 밑바닥에는 하느님이 불어넣어주신 순수한 영이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께서는 어떻게 기도할지 모르는 우리를 향하여 성령께서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깊이 탄식하시며 하느님께 간구하십니다.(로마 8:26)”라고 알려주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받은 영혼의 상처와 어두움으로 제대로 기도하지 못할지라도 이 말씀을 명심하고 용기와 인내를 갖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세관장 자캐오처럼 예수님을 만나기를 갈망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성령의 인도로 내 마음과 영혼에 오셔서 나를 구원으로 초대하시고 이로써 나는 점차 변화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믿는 기쁜 소식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지금 여기서 구원의 기쁨을 맛볼 것입니다.

이제 오늘 우리가 들은 제2독서에서 사도 바울께서 데살로니카 교회 신도들에게 하신 기도로 저희 설교를 마무리하겠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총과 평화를 여러분에게 내려주시기를 빕니다. …… 우리는 언제나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우리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당신의 부르심에 적합하게 해주시기를 빌며 선을 행하려는 여러분의 모든 의향과 여러분의 믿음의 행실을 당신의 능력으로 완성해 주시기를 빕니다.(2데살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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