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예수님과 동방박사: 선교를 다시 생각하다(공현대축일)
작성일 : 2023-01-08       클릭 : 136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0230108 공현대축일

이사60:1-6 / 에페 3:1-12 / 마태 2:1-12

 

예수님과 동방박사: 선교를 다시 생각하다

 

 

공현절(公顯節)을 영어로 Epiphany라고 합니다. 이 말은 그리스어 에피파네이아(επιφανεια)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숨겨진 것이 드러남또는 갑작스런 깨달음이란 뜻입니다. 1054년 그리스도교가 동방과 서방으로 분열된 이래, 동방교회와 달리 서방교회는 공현절과 주님의 세례축일을 따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서방교회에 속한 성공회도 이런 이유로 서방교회 전례전통을 따르고 있습니다. 매년 공현절마다 우리는 동방박사의 방문이야기를 듣습니다. 아주 멀리서 동방박사가 별의 인도로 아기예수를 찾아와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박사들이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영어와 중국어 성경에는 현자들(wise men)’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가들과 성서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이들은 점성술사(astrologist)라고 합니다. 현대 천문학의 모체가 된 점성학은 별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농사에 필요한 기후를 예고할 뿐만 아니라, 인간세상의 일들 또한 예측하는 학문이었습니다.

공현절을 맞아 저는 여러분에게 우리의 선교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자고 초대하고 싶습니다.

공현절의 의미를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하느님의 시각에서 보면, 하느님의 구원섭리가 유다민족이라는 특정민족으로부터 온 민족으로 퍼져나감을 뜻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사도바울은 이 점을 잘 설명하고 계십니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심오한 계획을 나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 그 심오한 계획이란 이방인들도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면서 유다인들과 함께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 한 몸의 지체가 되어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함께 받는 사람들이 된다는 것입니다.(에페 3:3, 6)” 이제 하느님은 사람이 되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민족을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인간의 관점에서 보자면,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는 참되고 영원한 진리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이 마침내 그 단초를 발견한 것입니다. 오늘 들은 복음에 등장하는 동방박사들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들은 별자리와 별들의 운행을 관찰하면서 자연의 변화, 인간의 흥망성쇠를 연구하였으며 그러한 변화하는 현상 너머로부터 이 세계를 구원해 줄 진실한 왕을 갈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한 간절한 마음으로 하늘을 연구하였고 마침내 구원의 별을 따라 베들레헴 마구간에 있는 아기예수를 찾고 그 앞에 자신들의 희망과 정성을 담은 보물을 봉헌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공현절은 하느님의 보편적인 구원섭리와 모든 인간의 근원적인 갈망이 만난 사건입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이 신비를 깨달으신 분입니다. 그래서 그는 성도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는 일꾼(에페 3:7)”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교란 사도바울처럼 이 기쁜 소식을 온 세계로 알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소식을 유대인들이라는 특정사람과 유다지역이라는 특정지역으로 국한하려는 사람들에 맞서서 모든 민족, 그리고 모든 지역으로 퍼져 나가야 한다는 것을 말과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신 분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선교역사는 바로 이러한 이상(理想)이 실현되어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의 선교역사는 이 이상이 잘 실현되지 못하거나 심지어 이것과 완전히 배치되는 슬픈 소식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특별히, 근세기 들어 유럽의 그리스도교 국가들이 유럽 바깥에 있는 지역을 식민지로 삼으며 확장할 때, 상당수의 선교사들 역시 그러한 식민지개척에 편승해서 복음화를 유럽화로 여기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어떤 학자들은 그리스도교가 서구 제국주의와 야합하였다고 그리스도교 선교역사를 혹평하기도 합니다.

사실 그리스도교 선교정신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 보이는 하느님 예수로 성육신(聖肉身)한 것처럼, 교회의 선교도 이 세상의 문화와 삶의 현실 등과 밀접하게 융화되어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 땅에서 출발한 복음이 지중해를 지나 유럽으로 전도되었을 때, 유럽인의 정신과 문화와 융합된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러한 선교의 정신과 역사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다른 지역으로 선교에 나선 서양의 선교사들이 그 지역의 문화와 정신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통해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점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사도 바울의 모범을 잘 따르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교회의 선교를 유럽 국가들의 제국주의를 가리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고 일축해 버리는 것은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해서 보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처럼 과도한 단순화는 그리스도교 선교 역사 전체에 흐르고 있는 연대기적이고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현실들을 외면한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성공회대학의 일부 교수님들과 신부님들이 이른바()식민지사상과 신학을 주장하면서 서구와 비서구를 대결적 구도로 보시는 것에 대하여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주장을 하시는 분들 역시 또 하나의 자기중심적 시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 선교를 이처럼 대결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은 서양과 동양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활발히 교류하는 지구촌 시대에 맞지 않는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오늘 복음에 나온 유다인 예수와 이방인 동방박사가 만난 이야기처럼 구원이라는 근원적인 차원에서 민족과 언어와 문화가 서로 만나고 기뻐하는 그런 선교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130년 역사를 지닌 우리 강화성당은 앞서 언급한 성육신 선교정신의 진수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곳 중 하나입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로 서양군대와 무력충돌을 한 이 강화 땅에 세 명으로 대표되는 각각의 정신과 기술이 만났습니다. 먼저, 마크 네이피어 트롤로프 신부(Rev. Mark Napier Trollope,한국명: 조 마가)로 대표되는 서양 선교사들입니다. 이분들은 영국에서 훌륭한 교육과 그리스도교 전통에 충실한 분들이었습니다. 동시에 선교지 문화와 현실에 대하여 열린 자세와 애정을 가진 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전통과 서구 그리스도교 전통 간에 진정한 대화를 추구하셨습니다. 다음으로 조선의 기술자들로 대표되는 조선인들입니다. 이 분들은 유교와 불교라는 오래된 종교문화와 한자로 대변되는 동아시아 문명권속에서 살아오신 분들이었습니다. 거기에 두 차례에 걸친 근대서양문명과의 충돌 속에서 큰 충격에 휩싸여 계신 분들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분들은 조선을 침략한 서양 사람에 대해 적대감을 갖고 있던 동시에, 자신들을 압도했던 그 기술과 힘에 당황하면서 자신들도 하루속히 그런 힘을 갖고 싶어 하는 복잡한 심경이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김희준 마가로 대표되는 예수를 영접한 조선의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 분들 역시 여느 조선사람들처럼 서세동점(西勢東漸)시기 크나큰 정신적 충격을 받으신 분들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혼란기 속에서도 진정한 가치와 삶의 방향을 탐구했습니다. 마치 동방박사들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이 분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속에서 구원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김희준 마가는 서양신부님들과 조선기술자들의 가교가 되어 오늘날 한국 그리스도교 교회건축에서 기념비적인 성베드로와 성바우로 한옥성당을 탄생시켰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성당은 너와 내가 진정으로 만나는 성육신 선교의 훌륭한 모델이 되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 복음인 동방박사의 방문이야기를 묵상하며 저는 동방박사들이 아기예수를 만나서 자신들이 갖고 온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듯이, 마크 트롤로프와 김희준 마가와 조선의 기술자 도편수는 각자 자신들이 갖고 있는 유무형의 자산들을 봉헌하여 아름다운 천주성전을 세웠다고 봅니다.

이제 우리의 시선을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들에게 돌려봅시다. 동방박사 그리고 우리한옥성당을 지은 세 분들은 예수님을 만나서 자신들의 것을 내어놓고 경배와 찬양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희망과 기쁨을 가지고 갔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떻게 만나시나요? 어떠한 갈망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으십니까? 그리고 예수님 앞에 무엇을 드리고 어떤 희망과 기쁨을 얻으실 건가요? 2000년 간 교회는 공현절을 기념하며 이 질문을 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찾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 찾은 것을 이웃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예배를 통하여 이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교회, 교구 그리고 교단도 이러한 선교의 정신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동방박사를 비롯한 온 세상 사람들에게 구원과 희망을 보여주신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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