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두 노인 이야기: 어둠 속에서 희망을 보다(주의 봉헌축일)
작성일 : 2023-02-05       클릭 : 133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0230205 주의 봉헌축일

말라 3:1-5 / 히브 2:11-18 / 루가 2:22-40

 

 

두 노인 이야기: 어둠 속에서 희망을 보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성전에 있는 두 사람의 어르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사람은 시므온(Simeon)이고, 또 한사람은 안나(Anna)입니다. 공동번역과 개역성경에서는 시므온이라고 하고, 가톨릭성경에서는 시메온이라고 하는 이 이름의 뜻은 하느님이 들으셨다입니다. 후대의 전설에 의하면, 시므온은 성전의 대사제로서 눈이 멀었는데, 아기 예수님을 본 순간 눈이 열려 알아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관습에 따르면, 부모는 아이를 성전에 있는 나이 많은 라삐 또는 사제에게 데려가 복을 빌어달라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 시므온이 한 기도로 보아 아마도 그는 나이 많은 사제였을 겁니다. 그러나 그가 눈이 멀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어찌 되었든, 이름이 의미하듯이 그는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헤로데와 같은 로마제국과 결탁한 왕의 치하에서 신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담아 하느님이 약속하신 참된 왕이 나타나길 학수고대하였고, 그러한 소망을 주님이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길 기도했습니다. 오늘 복음의 장면은 세례자 요한이 성전에 봉헌되었을 때, 요한의 아버지 즈가리아 사제가 드린 찬미의 노래(루가 1: 67-79 참조)가 자연스럽게 연상됩니다. 그래서 즈가리아 사제가 그랬던 것처럼 시므온 사제도 아기 예수를 안고 그 유명한 눈크 디미티스(Nunc Dimittis)’, ‘이제는 떠나게 하소서라는 찬미가를 불렀습니다. 우리말로는 시므온 송가라고 부릅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이 두 송가를 성직자, 수도자들이 하는 공동기도 전례에 널리 애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공회는 성직자, 수도자뿐만 아니라 신자들도 성공회 기도서를 통해 이 기도를 바칩니다. 먼저, ‘주 하느님은 찬미 받으소서로 시작하는 '베데딕투스 도미누스 데우스(Benedictus Dominus Deus)'는 우리말로 즈가리아 송가라고 부르는데, 주로 아침기도(morning prayer)에 바칩니다. 시므온 송가는 동방교회에선 저녁기도(evening prayer), 서방교회에선 밤기도(night prayer)에 바칩니다. 그렇지만 우리 성공회 성무일과에는 저녁기도와 밤기도 모두 시므온 성가를 바칩니다. 시므온 송가의 첫 구절, ‘이제는 떠나게 하소서라는 뜻을 공동번역 성경과 성공회 기도서에선 이 종은 평안히 눈감게 되었습니다라고 풀어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아기 예수를 뵈었으니 이제 여한이 없다는 시므온의 심정을 토로한 것입니다.

이처럼 여한이 없다는 심정을 토로한 사람이 오늘 복음에서 또 한 사람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안나 입니다. 안나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선지자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Hannah)와 같은 이름입니다. 한나는 히브리식 이름이고, 안나는 그리스식 이름입니다. 모두 은혜(Grace)’라는 뜻입니다. 여든넷이라는 당시로는 상당히 연세가 많은 할머니로서 한 평생을 성전을 중심으로 경건한 삶을 살아 온 안나 역시 시므온처럼 주님의 구원을 학수고대했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므온과 안나 이야기에서 우리는 이 분들이 간절히 기다린 이유가 단지 자신들의 구원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시므온은 오랫동안 기도하면서 꿈꿔왔던 구원의 희망에 대하여 자신을 넘어서 자기민족인 이스라엘로 넓혔고 마침내 자기민족마저 넘어서 이방인들, 즉 만민에게까지 확장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시므온이 평생을 기도하면서 성령의 은총으로 깨우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은 오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많은 경우 기도의 대상이 자기 자신과 자기 가족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매일 한옥성당 문을 열고 닫을 때, 성당을 방문한 사람들의 방명록에 쓴 기도내용을 보는데 가장 많은 것이 가족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자연스러운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평생 나와 가족만 생각하고 기도했다면, 내 신앙의 그릇, 내 소망의 범위도 그 정도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 면에서 노()사제 시므온의 중보기도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기도의 모습을 보여준 거라고 하겠습니다.

시므온 사제의 기도가 내 민족 그리고 세상만민이라는 넓은 지평으로 확장하고 있다면, 안나 할머니의 기도는 예루살렘의 구원(redemption of Jerusalem)’이라는 한 지점을 향해 깊이 있게 기도했습니다. 공동번역 성경에선 예루살렘의 구원이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이 구절에서 표현한 구원은 몸값을 주고 구해내다라는 구속(救贖)’이란 단어가 더 정확합니다. 다시 말해, 이 아기가 장차 자신을 십자가의 희생으로 몸값을 치루고 예루살렘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찾아 올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예루살렘일까 궁금해 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일찍이 주님께서 다윗과 솔로몬을 통해 당신이 머무실 곳으로 예루살렘을 정해서 거기에 성전을 지었고, 이 곳은 하느님의 거룩함이 깃든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과는 반대로 예루살렘은 추악한 정치와 타락한 종교가 결탁한 곳으로 오염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가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신앙에 부정적인 결과만 불러일으켰습니다. 안나 할머니는 바로 이러한 예루살렘의 모습을 개탄하고 본래의 거룩한 곳으로 회복되길 간절히 염원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루살렘의 구원을 위해 한평생 기도했던 안나의 기도는 오늘날 교회의 쇄신을 열망하는 신앙인들에게 하나의 훌륭한 본보기라고 생각합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예배에서 우리는 한 해 동안 사용할 양초를 봉헌하고 축복하였습니다. 이 양초는 교회에선 공적인 예배에, 그리고 가정에서 개인 혹은 식구들이 기도할 때 혹은 심방과 구역기도와 같은 소모임 예배 때 불을 밝힐 것입니다. 그리고 이 초를 보면서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어둠에서 길을 못 찾고 있는 우리의 눈을 뜨게 해달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보여 달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시므온처럼 그 희망을 나와 내 주변뿐만 아니라 내가 잘은 모르지만, 어디선가 어둠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연대하여 그 염원을 하느님께 간구하길 바랍니다. 또한 안나가 예루살렘이라는 한 곳을 정하고 깊이 있게 기도했듯이 내 자신, 혹은 내 가정뿐만 아니라 우리교회, 우리나라, 아니면 어떤 곳을 향해 깊이 있게 기도하시길 권합니다. 이처럼 시므온과 안나가 희망을 갖고 꾸준히 기도하여 아기예수를 만났듯이, 우리도 우리의 간절한 소망과 꾸준한 기도가 주님께 닿아서 응답받길 소망합니다.

해마다 2월이면 졸업식이 있고, 새로운 곳으로 입학을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오랫동안 기다림이 한 매듭을 짓고,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이 시기! 우리는 무엇을 소망하고 무엇을 위해 기도하나요? 그럴 때, 시므온과 안나의 기도는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한 차원 올리는데 길잡이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도에는 꾸준한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시므온과 안나가 전() 생애를 걸었듯이 말입니다. 여러분도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소망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소망을 주님께 말씀드려 보십시오. 그것도 인내심을 갖고 말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여러분이 기도하는 중에 성령의 은총으로 더 넓고, 더 깊은 차원으로 여러분을 변화시켜 주실 것이고, 마침내 그 곳에서 아기예수를 만나듯이 여러분을 맞아 주실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희망을 보여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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