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처음처럼(가해 부활4주일)
작성일 : 2023-04-30       클릭 : 106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30430 가해 부활4주일

사도 2:42-47 / 1베드 2:19-25 / 요한 10:1-10

 

처음처럼

 

오늘은 성공회대학교가 이곳 강화에 설립된 날입니다. 재작년 우리 교회는 강화군청의 도움으로 이곳을 공원으로 조성하였고, 성공회대학교 개교기념일인 오늘 축복식을 거행하였습니다. 현재 성지(聖地)공원으로 부르고 있는 이 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해군사관학교인 통제영(統制營)학당 교관으로 초빙된 영국인 교관 콜웰(Colwell)대위와 그의 부관 커티스(Cartes) 부부가 살던 사택을 1896년 매입하여 1897년 강화선교본부로 삼은 곳입니다. 그 후, 이곳은 191411일 한국인 사제 양성을 목적으로 김희준, 구건조 두 신학생을 교육하기 시작해서, 같은 해 430일 전국 각지에서 온 11명의 학생으로 개교하였습니다. 저는 이 곳이 대한성공회 선교역사에서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봅니다.

첫째로, 이곳은 선교 공동체였습니다. 영국 성공회 역사를 보면, 베네딕트 수도회 수도자들이 유럽대륙과 마주하고 있는 영국 남동부에 있는 캔터베리(Canterbury)에 수도공동체이자 선교공동체를 설립하고 잉글랜드선교를 하였습니다. 강화선교본부는 마치 초창기 영국선교사들처럼 선교단을 구성해서 함께 기도와 예배, 교육과 전도에 힘쓴 곳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곳은 영국성공회 선교전통을 계승한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이곳은 교육과 훈련 공동체였습니다. 1914430일 이 건물 소성당 제대에서 성 미가엘(St. Michael)’을 기념하는 미사를 거행하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후대 사람들은 성 미가엘 신학원혹은 미가엘 천사가 천사들 중 으뜸이란 뜻으로 천신(天神)이라고 칭한 것에 착안해서 천신신학교라고 부르다가, 오늘날에는 성공회대학교(Sungkonghoe University)’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래 이름은 강화수도원(Ganghwa Training College)’입니다. 그러면 영국선교사들이 이 곳을 신학원 혹은 신학교라고 하지 않고, 왜 수도원이라고 하였을까요? 그것은 3대 교구장이었던 마크 트롤로프(Mark Trollope) 주교께서 성직자 양성은 단지 서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목에 필요한 실제적 경험을 체득하는 것을 중요시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기도와 예배, 공부와 노동을 통하여 신학생들에게 지적, 영적, 사목적 양성이라는 균형 있는 훈련을 시키길 꿈꿨던 것입니다. 이것은기도하며 일하라(Ora et Labora)’라는 그리스도교 수도원 영성전통을 계승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인 사도행전에서 우리는 위에서 언급한 교회전통의 원형을 들었습니다. 성령의 은총으로 회개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교회 공동체를 이뤘습니다. 이들은 사도들로부터 교회의 가르침을 배웠으며, 성만찬에 참여하여 함께 빵을 나눠 먹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고, 기도에 전념하였습니다. 또한 영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재산을 나누는 신앙실천을 통해서 당시 엄격한 빈부귀천이라는 계급사회의 장벽을 허물고 하느님 안에서 모두가 한 형제자매라는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러한 초대교회의 모습은 이후 교회역사를 통해 수많은 신실한 신앙인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으며, 수많은 수도원 운동은 모두 이러한 초대교회모습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 마지막 구절은 다음과 같이 결론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주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늘려 주셔서 신도의 모임이 커 갔다. (사도 2:47)이것은 이러한 신앙실천이 선교라는 열매로 귀결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초대교회 공동체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그 내적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를 죽음이라는 단절과 공포, 다른 말로 표현하면 죄의 노예상태에서 구원해 주신 예수님을 나의 주님, 나의 목자로 깊이 신뢰하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목자와 양의 비유를 들어 이것을 알려주십니다. 마르코, 마태오, 루가 복음과 달리 요한복음은 비유이야기가 별로 없습니다. 요한 복음에서 비유는 오늘 우리가 들은 착한 목자의 비유15장에 있는 포도나무의 비유뿐입니다. 이 두개의 비유는 모두 영원한 생명에 관한 것이 핵심 주제입니다. 착한 목자 비유에서 예수께서는 당신을 문()이요, 목자(牧者), 그리고 당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양()들로 묘사하십니다.

먼저, 문이신 예수님은 들어오는 이들에게 구원을 주시고, 나가는 이들에게 넘치는 생명을 주십니다. 사람들은 이 문을 통하여 진리에 올바로 접근할 수 있고, 이 문을 통과하여 안전하게 풀밭으로 나가서 생명을 넘치게 얻습니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다. (요한10:10)이 말씀을 통해 주님은 우리에게 죽음을 이길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하는 당신의 목적을 분명히 하십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당신을 착한 목자라고 하십니다. 착한 목자라는 표상은 구약성경에서 당신 백성을 돌보시는 하느님께 적용됩니다. 예수님은 이 표상으로 당신을 묘사하십니다. 그렇지만 오늘 복음에선 교회는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과 양()인 우리들과의 관계를 더 집중해서 생각해 보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선 양들은 누가 목자이고, 누가 낯선 사람인지 압니다. 그래서 아무리 따라오라고 말해도 양들은 그 목소리에 따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피해서 달아납니다. 오직 목자의 목소리를 듣고 서야 따라갑니다. 이 비유는 당시 예수님이 하시는 진리의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았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암시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 어거스틴(St. Augustin)은 이것에 관해 나는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다(I believe in order to understand)”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목자와 양의 관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 믿음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신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목자와 양들 간에 깊은 신뢰와 믿음이 있을 때, 양들 간에도 신뢰가 형성됩니다. 교회는 바로 이러한 믿음과 신뢰위에 세워져야 든든한 반석이 됩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올해 우리 교회는 강화선교 130년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강화선교본부이자 성바우로 회당이었던 곳, 그리고 성공회대학교의 전신이자 성직자 양성의 시발점이었던 성지공원축복식을 했습니다. 이 행사를 통하여 우리 교회는 한옥성당뿐만 아니라 선교와 교육이란 측면에서도 훌륭한 유산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오늘 성공회대학교 개교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우리 교회의 초심, 그리고 2000년 전, 초대교회가 실천했던 교회의 초심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제 이러한 초심을 잘 계승하고 발전시켜 우리 교회가 이 땅의 교회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는 곳이 되길 희망합니다.

착한 목자이자 영원한 생명의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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