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가해 부활6주일)
작성일 : 2023-05-14       클릭 : 113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30514 가해 부활6주일

사도17:22-31/1베드 3:13-22/요한 14:15-21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

 

지난 주일 복음말씀에서 우리는 제자들이 예수께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하자,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요한 14:9)라는 예수님의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설교에서 오직 믿음이 있어야만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주일 독서와 복음에서 우리는 그러한 믿음을 갖게 된 신앙인들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떠한 능력을 갖게 되는지 들었습니다.

먼저, 믿음이 있는 신앙인은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선한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제2독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깨끗한 양심을 지니고 사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의 착한 행실을 헐뜯던 자들이 바로 그 일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1베드 3:16).  오늘 우리가 들은 베드로의 첫째 편지는 64년경, 로마의 네로 황제의 박해가 있기 직전 소아시아와 지중해 일대에 흩어져서 나그네 생활을 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쓴 글입니다. 오늘날과 달리 고대에는 고향을 떠나 산다는 것은 상당부분 고달픈 생활이었습니다. 노예로 팔려가거나 아니면 먹고 살기가 힘들어 다른 지역에 가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네 고향과 같은 편안함과 따뜻함이 없는 타향에서 외로운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런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한 가족을 이루고, 사랑으로 선한 일을 실천함으로써 적대적인 주변환경을 이겨내고 변화시켜 나갔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교회는 구약시대 노아의 방주처럼 세례를 통해 깨끗한 양심으로 재탄생하는 구원과 기쁨을 가져다주는 영적인 배()였던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교회는 전통적으로 스스로를 구원의 방주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옥성당은 바로 이러한 정신이 건축물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것은 한옥성당의 위치가 읍내 언덕 위에 세워져 있어서 상공에서 보면 마치 노아의 방주처럼 구원의 방주와 같은 이미지를 띠고 있습니다. 또한 중생지천(重生之泉)’이라고 쓰여진 세례대는 믿음으로 거듭나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체성은 이제 살아가면서 유지되고 발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례대의 또다른 면에는 바로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간단명료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수양하고(修己), 마음 즉 양심을 깨끗이 하며(洗心). 그런 다음 악행을 몰아내고(去惡), 선행을 하라(作善)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신앙선조들은 이상과 같이 8글자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명쾌하게 표현하였습니다.          

다음으로 깨끗한 양심을 지닌 그리스도인은 눈이 맑아져서 사물의 본질을 잘 꿰뚫어 보게 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사도 바울이 아테네 시민들에게 한 설교는 이 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아직 모르는 그리스인들에게 그들의 문화와 예술작품 속에 드러난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공경심을 발견하고, 그것을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보이는 계시로 해석합니다. 다시 말해, 주님을 체험하고 믿음을 가진 바울이 보기에, 온 세상은 하느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에 그는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 하느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주재하는 분이라는 것을 상대방의 문화 속에서 꺼내서 보여줬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한옥성당은 사도 바울이 하셨던 문화를 통한 복음의 증언을 잘 계승한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주님의 성전이 반드시 서양식 성전이어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한국인들이 오랫동안 살아왔던 한옥으로도 얼마든지 된다는 것을 잘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옥성당 마당에 있는 보리수나무(菩提樹)와 지금은 태풍으로 없어졌지만 회화나무(槐花) 등은 이 땅에 오래된 정신문명인 불가와 유가의 사상 속에 담겨있는 진선미(眞善美)와 대화하는 마치 오늘 사도 바울이 그리스 사상 속에서 신의 계시를 드러내려는 정신과 일맥상통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정신은 교회나 선교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신앙인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가정교육의 예를 들어보자면, 자녀를 양육하는 신앙인 부모들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자신들의 생각이나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강요하기 보다는 아이들 안에 잠재해 있는 주님이 선물로 주신 보이지 않는 달란트가 잘 꽃피울 수 있게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세상사람과는 다른 그리스도인 부모들의 자녀교육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의 인생관, 직업관을 예를 들어 보자면, 눈에 보이는 작금의 세태에서 가장 주목받고, 돈 많이 벌고, 권세를 누릴 수 있는 것을 가치판단의 근거로 삼기 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랑과 정의와 평화가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보람되게 하고, 즐겁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하느님이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존재이유(meaning of life)’라는 것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럴 때 나라는 존재는 물질적이고 한시적인 이 세상에서 있다가 없어지는 상태로 있지 않고, 주님이 주신 영원의 빛을 받아 이 세상에서 충만한 삶을 살다가 영원의 세계로 구원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태도를 선택하고 지속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마도 우리 대부분은 힘들어서 중도에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갈대같이 흔들리는 우리들의 속성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시는 예수님은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 두지 않으시고 우리를 도울 협조자를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분은 바로 “진리의 성령(요한 14:17)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성령이 오시면 우리는 두 가지 선물을 받게 됩니다. 하나는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다는 것과, 예수님이 하느님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말씀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신앙의 신비를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는 각자가 홀로 살아가는 외로운 존재들이 아니라, 성령을 통하여 성자와 성부와 함께 거룩한 가족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또 하나의 선물은 주님이 명하신 계명을 지킬 힘을 갖는 것입니다. 이 계명이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마음, 우리의 양심은 하느님을 점점 닮아서 지혜롭고 어진 사람으로 성화(sanctification)되어 갑니다. 이 거룩하게 되는 과정을 우리 한옥성당 세례대는 8글자로 명료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부활절의 기쁨을 기념하면서 교회는 이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부활의 신비를 깨닫고, 지속적으로 성숙해지면서 이것을 세상에 전할 영적 힘을 주시는 것으로 나아간 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 힘은 바로 성령으로부터 나옵니다. 그 성령의 선물이 오래전 발생했던 것을 기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금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교회와 우리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주님이 보내주시기로 한 그 거룩한 영을 받아서 우리 역시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우리 강화성당이 설립될 당시 신앙의 선조들처럼 보이는 문화에서 보이지 않은 하느님의 신비를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창조적인 신앙인들, 그리고 선한 행실로 주님이 주신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거듭 날 수 있도록 주님께 간구합시다.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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