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낯설고 당혹스런 징표(가해 대림4주일)
작성일 : 2022-12-18       클릭 : 162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가해 대림4주일

이사 7:10-16 / 로마 1:1-7 / 마태 1;18-25

 

 

낯설고 당혹스런 징표

 

 

기업이나 기관 혹은 국가가 상대방과 거래를 하거나 투자를 할 때, 처음부터 정식계약을 체결하진 않습니다. 대부분은 정식계약을 체결하기 전() 단계인 MOU(Memorandum of Understanding)를 체결합니다. 우리말로 양해각서(諒解覺書)라고 부르는 MOU는 법률적 구속력이 있는 계약서와는 달리 일종의 사전업무협약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MOU가 법률적 구속이 없다고 해서 쉽게 파기할 수 있는 약속은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약혼(約婚)과 비슷합니다. 왜냐하면 약혼은 장차 혼인할 것을 약정하는 당사자 간의 계약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MOU와 약혼은 쌍방 간 정식계약을 보장해주는 확실하고 안정적인 징표입니다.

오늘 제1독서와 복음은 징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징표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기대하던 것과는 다른, 그래서 낯설고 당혹스럽기까지 한 징표입니다.

먼저, 1독서의 내용을 보겠습니다. 당시 유대민족은 북으로는 이스라엘 왕국, 남으로는 유다왕국으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북이스라엘의 왕인 베가는 다마스커스에 있는 아람 왕과 결탁하여 같은 동족인 유다왕국을 에워싸고 호시탐탐 침략의 기회를 엿봤습니다. 이에 불안을 느낀 유다왕 아하즈에게 이사야 예언자는 다음과 같이 조언했습니다: “왕이여, 하느님께 징표를 구하십시오. 하느님이 징표를 주실 것입니다. 한 젊은 여성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에게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지어줄 겁니다.(이사 7:11-14 참조)” 여기서 임마누엘이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이사야의 조언에 대하여 아하즈 왕은 아마도 다음과 같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내게 지금 필요한 것은 적들의 침략을 맞서 싸울 마차, 전차, 칼인데 기껏 임산부와 아기가 징표의 전부란 말인가?” 그의 눈에는 자신과 자신의 적들만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징표를 믿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아하즈 왕은 앗시리아라는 외세의 힘을 빌어 주변 적의 공격을 막으려했습니다. 그러나 역사가 말해주듯이, 앗시리아는 이 기회를 이용해서 유다와 같은 동족인 북 이스라엘왕국을 멸망시키고, 나아가 남쪽에 있는 유다왕국을 압박함으로써 유다의 아하즈왕은 혹 떼려다 혹 붙인 꼴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아하즈 왕 때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징표는 그의 어린 왕비가 임신하여 왕자를 낳고, 그 아기가 후일 히즈키야 왕이 되는 걸로 실현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히즈키야 왕은 아버지 아하즈 왕과 달리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종교개혁을 통해 유다민족의 정체성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훗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으로 회심한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오늘 우리가 들은 구약성경 이사야 예언서를 읽으며 진정한 임마누엘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이해하고 믿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초대교회는 구약성경을 읽으면서 하느님은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때와 뜻밖의 장소에서 나타나시어 우리 인간을 부르셔서 기대하지 못했던 징표를 보여주시고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뜻밖의 징표가 바로 아기 예수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오시는 하느님이 우리 인간을 얼마나 놀라게 했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청년 요셉은 선하고 배려와 사려가 깊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복음서에는 그를 법대로 사는 사람(마태 1:19)’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법이란 유다교의 율법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종교심이 깊은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또한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낼 생각이 없었다(마태 1:19)’는 걸로 보아,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행여나 어떻게 될까봐 보호해주려는 선한 심성의 사람임을 엿볼 수 있습니다.

루가복음에선 처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될 거라는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통지를 받고 놀라면서도 하느님의 메시지를 받아들였다고 한 반면, 마태오 복음에선 마리아의 이런 이야기는 없고, 그녀가 약혼하고 같이 살기 전에 잉태했다는 짤막한 사실만 전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야기의 초점을 이 사실을 알게 된 요셉에게 맞추고 있습니다. 이 장면을 묵상하며 저는 몇 가지 상상을 해 봅니다.

마리아 역시 굉장히 놀랐겠지만 그래도 초자연적 존재인 천사라도 와서 그 사실을 알리고 대화를 나눴다면, 요셉은 자신이 사랑하는 그래서 인생의 반려자로 삼은 약혼녀로부터 이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그가 보기에 마리아가 아무리 착하고 순수한 여자라고 하더라도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사실이라고 믿어달라고 할 때, 얼마나 기가 막히고 심한 배신감이 들었을까요? 사랑이 미움으로 변하고, 신뢰가 불신으로 180도 바뀌는 심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이 외부로 알려져서 사랑하는 마리아가 돌 맞아 죽거나 극심한 모욕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등. 요셉의 마음은 극심한 혼란과 온갖 복잡한 심경으로 괴로웠을 것입니다.

이처럼 힘든 불면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요셉에게 주의 천사가 꿈에 나타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 들여라. 그의 태중에 있는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하고 일러주셨습니다(마태 1: 20-21).” 성경은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의 천사가 일러 준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하였다(마태 1:24)”고 전하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이 모든 낯선 이야기를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때때로 하느님은 우리자신의 한계를 감안하셔서 당신 자신을 혹은 당신의 가르침을 우리 수준에 맞게 조정하거나 약화시키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당신 자신과 그 가르침의 낯섦을 증폭시킵니다. 하느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성육신(Incarnation)'은 이런 낯설음을 극적으로 계시한 것 중 하나입니다. 사실, 예수님 오실 무렵 유다인들은 기름부은 사람, 즉 메시아가 와서 잘못된 세상을 바로 잡아주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예수가 나타나자 사람들은 메시아가 저런 모습일 리 없어. 로마민족에게서 우리를 구해주고 새로운 다윗왕조를 세울 지도자이자 개선장군처럼 행진해 들어 올 군사 지도자를 보내 달라고 기대했는데나자렛 촌동네 출신 예수라니하고 실망하고 비웃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징표는 우리를 낯설고 당혹스럽게 합니다. 더욱이 공리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진리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그게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그 종교가 참이기 때문에 믿는다 라기보다는, 그 종교가 나에게 유익한가라는 이유로 수용여부를 결정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의 상상으로 만들어낸 신을 훌쩍 넘어서는 분이십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매년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성탄의 신비를 묵상하고 기념하는 것은 우리의 실용적인 요구에 의해 설정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느님이 주도적으로 우리 삶에 개입해 들어오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요, 하느님이 온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께서 주도적으로 특정한 사람을 부르시고 들어 쓰신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시골처녀 마리아와 시골총각 요셉을 당신의 방식대로 부르시고 들어 쓰신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신앙은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부르심과 초대에 대한 우리의 응답입니다. 하느님은 지금도 우리의 예상을 넘어서 우리 삶에 개입해 들어오십니다. 그 개입이 때론 낯설고 당혹스럽더라도 요셉처럼, 그리고 마리아처럼 받아들일 때 하느님이 계획하신 기적이 일어납니다. 아기예수가 오신 것처럼 말입니다.

놀라운 징표로 우리 삶에 개입하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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