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가해 성탄 밤 감사성찬례)
작성일 : 2022-12-24       클릭 : 171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0221224 가해 성탄 밤 감사성찬례

이사 9:1-6 / 디도 2:11-14 / 루가 2: 1-14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

 

 

올해 우리교회는 성탄구유를 한옥성당 내삼문 안에 마련했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한옥성당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구유장식을 봅니다. 날씨가 추워져서 그런지 무생물이지만 구유에 있는 동물과 사람인형이 너무 춥지 않은지 하는 안쓰러운 마음이 듭니다.

2000년 전 그날 밤, 천사는 목동들에게 나는 너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러 왔다. …… 오늘 밤 너희의 구세주께서 다윗의 고을에 나셨다. 그분은 바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이시다.(루가 2:10-11)”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쁜 소식을 이왕이면 사회적 영향력이 큰 율법학자, 바리사이파 사람들, 심지어 예루살렘 성전의 대사제들인 사두가이파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고, 왜 목동들에게 했을까요? 요셉이 다윗의 후손이고,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는 목동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과 목동이라는 다윗의 출신배경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유대교 율법에 따르면, 목자는 세리처럼 천한 직업으로 취급되었기에 왕가(王家)의 후손이라는 품격과는 좀 맞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이 믿고 고백하는 왕은 세상의 왕과는 다릅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했듯이 예수님은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신(필립 2:6-7)” 분이십니다. 이처럼 자신을 비운 분이시기에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천사들도 이러한 주님의 뜻에 따라 낮고 비천한 목동들에게 먼저 위대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우리 인간에게만 국한하지 말고, 좀 더 넓은 관점에서 본다면, 하느님이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단지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기쁜 소식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 시편은 이 기쁨을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바다도, 거기 가득한 것들도, 다 함께 환성을 올려라. 들도, 거기 사는 것도, 다 함께 기뻐 뛰어라. 숲의 나무들도 환성을 올려라. 주께서 세상을 다스리러 오셨다. 그 앞에서 즐겁게 외치어라.(시편 96:11-12)”

다시 말해, 하느님이 인간으로 태어나셨다는 것은 인간을 포함하여 온 자연이 다함께 기뻐하는 경사스런 사건입니다.

올해 대림시기 저는 매일 성당 문을 여닫을 때 보던 구유에 있는 인형, 특별히 소와 양, 말 등과 같은 동물인형을 보다가 문득 예수님이 마구간에서 태어나실 때, 거기에 있던 가축들은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초등학교 시절 몇 년간 시골에서 살았을 때, 집에서 기르던 암소가 한 겨울에 송아지를 낳았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그 어미 소는 방금 힘들게 낳은 자기새끼를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보면서 정성껏 돌보았습니다. 당시 어린 저는 뭔지 모를 생명의 경외감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어쩌면 하늘에서 천사가 들판에 있던 목동들에게 장엄하고 기쁜 소식을 알려주기 전, 하느님이 인간이 되신 놀라운 생명과 구원의 사건 그리고 그 거룩한 기운은 이미 아기예수가 태어난 그 허름한 마구간을 감쌌을 것이고, 그러한 신비를 마구간에 있던 가축들은 온 몸으로 느끼지 않았을까 상상해 봅니다.

이런 측면에서 하느님이 인간이 되심, 그것도 인간의 자리도 아닌 동물의 자리인 말구유간에 태어나셨다함은 인간뿐만 아니라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들을 포함한 삼라만상까지 온전히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우주적인 구원섭리인 것입니다. 우리한옥성당 앞에 걸려있는 5개의 주련(柱聯) 중 네 번째 시() 역시 이것을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神化周流囿庶物同胞之樂(신의 기운이 두루 흘러서 모든 만물에 깃드니 동포의 즐거움이로다)

이것이 제가 올해 한옥성당에 있는 구유를 보면서 묵상한 성탄신비입니다. 그리고 이 성탄의 신비를 묵상할 때, 포대기에 싸여서 엄마 마리아에게 있는 아기 예수의 모습도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오늘 주보에 소개한 동방정교회의 성화(Icon)가 떠올랐습니다. 이것은 매년 815일에 기념하는 성모안식(聖母安息, Dormition)축일 그림입니다. 이 그림에서 성모 마리아는 예수님의 제자들, 즉 사도(使徒)들에게 둘러싸인 채 침대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침대 옆에는 예수님께서 포대기에 싸인 갓난아이를 두 팔로 안은 채 서 계십니다. 이 갓난아이가 바로 성모 마리아의 영혼입니다. 갓난아이 예수를 안던 마리아가 이제 갓난아기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팔에 안긴 것입니다. 아들의 품 안에서 어머니 마리아는 새로운 생명을 얻습니다. 오늘 성탄의 모습이 갓 태어난 아기예수를 어머니 마리아가 안고 있는 거라면, 성모안식의 모습은 방금 돌아가신 성모 마리아의 영혼을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안고 계시는 모습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 신앙인에게 있어서 태어남은 죽음, 그리고 죽음 너머에 있는 영생으로 태어남을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연약한 아기로 오셨다함은 시간적으로 볼 때, 이 세상시간으로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인간을 포함한 삼라만상을 영원한 시간으로 들어 올리시려는 원대한 구원계획의 첫 문을 여신 놀라운 사건인 것입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아기예수가 태어난 오늘 밤! 우리는 이 놀랍고 신비스런 구원사건을 경축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날 우리교회는 세례를 통해 두 명의 하느님 자녀가 태어나는 기쁨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우리한옥성당 세례대에는 새로 태어남을 중생(重生)’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는 세례는 영적으로 볼 때, 포대기에 싸여있는 아기예수와 같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성모 마리아와 요셉과 같은 어른들의 보살핌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 신앙공동체가 이 어린 자녀들의 신앙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기도와 돌봄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오늘 세례를 받은 어린 신자를 비롯한 우리교회 미래세대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기예수가 자라서 어머니 마리아를 돌보듯이, 우리교회 미래 세대들이 장차 훌륭한 청지기들로 우리교회를 잘 돌보길 희망합니다.

설교를 마무리하며 2000년 전 그날, 하늘에서 찬양했던 그 말씀을 다시 한 번 선포합니다: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가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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