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말씀이 살(肉)이 되셨다! : 두 번째 창세기(Genesis)의 시작(성탄 낮 감사성찬례)
작성일 : 2022-12-25       클릭 : 137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0221225 성탄 낮 감사성찬례

이사 52:7-10 / 히브 1:1-4 / 요한 1:1-14

 

 

말씀이 살()이 되셨다! : 두 번째 창세기(Genesis)의 시작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요한 1:1)”로 시작하는 요한복음을 읽을 때마다 저는 미국의 공상과학영화 스타워즈(Star Wars)'의 오프닝 장면이 떠오릅니다. 1978년 초등학교 6학년 시절 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을 때 대형 스크린에 광활한 검은 우주와 웅장한 음악을 배경으로 '오래전 멀고 먼 은하계에 (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로 시작하는 배경자막이 나오면서 서서히 우주의 저 끝으로 멀어져가는 오프닝 크롤(opening crawl)장면에 압도되어 내 자신이 마치 아득히 먼 옛날 끝없이 광대한 우주에서 벌어진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어릴 적 스타워즈라는 공상과학영화로부터 충격과 감동을 받아서인지 몰라도, 창세기 1장 우주와 세상을 창조하는 이야기와 오늘 요한복음 1장 앞부분을 읽고 명상할 때면 가끔씩 우주라는 광대한 스케일 속에 내 자신도 함께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곤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요한복음 1장 앞부분에 있는 문장들은 마태오나 루가복음에서는 느낄 수 없는 성육신(聖肉身)신앙의 우주적 차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치 영화 스타워즈의 오프닝 크롤링처럼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요한복음이 계시하고 있는 그 독특함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느님은 말씀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십니다. 이제 요한은 태초부터 있었고 세상을 창조한 그 말씀이 우리에게 왔고, 그 분이 바로 그리스도라고 선언합니다. 또한 일찍이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라는 것에 대하여 외아들이신 하느님께서 하느님을 알려주셨다(요한 1: 18 참조)”라는 성육신 사건으로 새로운 차원이 시작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이처럼 말씀이 살이 되었다는 선언은 참으로 충격적입니다. 왜냐하면, 그전까진 사람들은 하느님은 초월자이고 전능하신 분이라서 감히 볼 엄두를 낼 수 없었고, 만일 그 분을 보면 죽는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에서 나를 보고 나서 사는 사람은 없다(출애 33: 20)”는 야훼 하느님의 말씀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와 같이 그토록 장엄하고 저 높이 계신 하느님이 이 지상의 물질이 되신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작은 아기로 오셨습니다. 이리하여 두 번째 창세기(Genesis)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으로 새로운 세상,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창조되었습니다. 창세기에선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하시자 빛이 생겼다(창세 1:3)”고 했습니다. 요한복음에선 한 발 더 나아가 그 빛이 어둠 속에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요한 1:5 참조)”고 말합니다. 여기서 어둠이란 혼란과 온갖 악이 만연한 우리현실입니다. 또한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했다는 말씀을 달리 번역하자면, ‘어둠이 빛을 붙잡지 못했다’, 혹은 어둠이 빛을 이해하지 못했다라고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 그것은 불행하게도 우리의 욕심과 욕망 그리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온갖 악으로 인해 빛으로 오신 말씀을 알아보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몰이해와 거부가 우리의 솔직한 현실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1228일 교회가 죄 없는 아기들의 순교를 기념하는 것은 바로 이 현실을 망각하지 말라는 일깨움입니다. 이 날에 교회는 헤로데가 장차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지 모를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베들레헴에 있던 죄 없는 아기들을 학살한 현실을 기억합니다. 이처럼 교회 전례는 성탄이라는 기쁨의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고통과 피의 이야기를 언급합니다. 그렇지만 비록 우리 가운데 여전히 슬픔이 있음을 정직하게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희망을 갖고 기쁨의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말씀이 사람으로 오셔서 세상을 비추는 빛은 현실의 어둠을 피하거나 거부하지 않습니다. 빛은 성육신을 통해 죄로 점철된 우리현실 안으로 들어와 활동하며 마침내 궁극적인 승리를 거둡니다. 이것이 우리가 말씀을 기쁜 소식이라고 부르는 이유인 것입니다. 세상은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러기에 간절히 붙잡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장차 십자가에서 악한 세상과 치열한 대결을 벌이실 것이며, 부활로써 그 장엄한 승리를 거두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기에 예배 때 신경에 나오는우리 인간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사람이 되셨다는 기도문으로 하느님께 찬양 드립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어제 성탄 밤 예배에서 우리는 세상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이 2000년 전 이스라엘 베들레헴이라는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에 태어나심을 기념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성탄 낮 예배에서 우리는 요한복음을 들으면서 2000년 전 베들레헴 마구간에 태어나신 아기가 실은 태초부터 존재하시고 우주와 거기에 있는 모든 존재를 창조하신 분을 다시금 깨닫고 찬양합니다. 이처럼 성육신은 하느님과 인간을 비롯한 물질세계를 이어주고,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며, 장소와 장소를 이어줍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창조와 구원을 이어서 우리와 모든 것을 완성으로 이끌어 줍니다. 그러나 그 완성으로 가는 길은 결코 비단길이 아닌 구불구불한 길이며, 심지어 죽음의 칼날이 내리치는 비장한 십자가의 길입니다. 하느님은 이 길을 당신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하셔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의 겸손을 알기에 우리는 이 날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함께 걸으며 완성을 향해 갑니다.

사람이 되심으로 우리를 다시 새롭게 창조하시는 창조주이시자 구원자이신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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