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아예 맹세를 하지 마라. ······ 그저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만 하여라.” 오늘의 묵상: 가볍고 연약한 존재 맹세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결혼서약, 대통령 취임선서, 그리고 성직 서품 서약 등. 그러나 백년해로를 맹세한 부부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충성하겠다는 대통령도, 오직 하느님과 당신의 교회를 위해 헌신하겠다던 성직자도 시간의 흐름 속에 그 묵직하고 신성한 맹세를 퇴색시키면서 끝내 회한으로 마감하기도 합니다. 참으로 슬픈 현실입니다. 저는 나이를 들어감에 따라 맹세가 주는 무거움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 무거움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나의 가볍고 연약한 모습이 점점 두렵습니다. 이러한 인간실존의 한계인지 몰라도 오늘날 바쁜 도시생활과 복잡한 인간관계망에서 저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가벼운 관계를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맹세’는 우리시대와 점점 멀어져가는 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아예 맹세를 하지 마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에서 우리가 어떤 것에 기대어 맹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홀로 그 맹세의 무게를 온전히 견디지 못하고 회피하려는 인간실존의 한계를 꿰뚫어 보시고 하신 말씀이 아닌가 합니다. 더 나아가 “예”와 “아니오”만이라도 정확히 말하라고 하십니다. 어쩌면 우리는 사실을 직시하면서 그에 대한 “예”와 “아니오”로 말하길 두려워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기에 부부도, 대통령도, 성직자도 힘든 사실이 닥칠 때 “예”와 “아니오”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부수적인 변명이나 유한한 어떤 힘에 의지하면서 회피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이 반복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순수하고 풋풋한 시절에 한 서약들이 점차 빛바랜 낡은 사진처럼 되가는 것 같습니다. 지금껏 어떤 것에 기대어 과신했던 나의 허상을 벗고 가볍고 연약한 내 실존을 주님 앞에 봉헌합니다. 이러한 나에 대하여 “예”할 때, 주님은 당신의 무한한 은총으로 나를 받아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연약한 내가 했던 그 맹세들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의 무한하신 사랑에 “예”하고 응답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