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십자가에 달린 왕(다해 왕이신 그리스도주일)
작성일 : 2022-11-20       클릭 : 262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21120 다해 왕이신 그리스도주일

예레 23:1-6 / 골로 1:11-20 / 루가 23:33-43

 

 

십자가에 달린 왕

 

교회력으로 오늘은 한 해의 마지막주일입니다. 교회는 이 날을 왕이신 그리스도주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주권이 왕이 아닌 국민에게 있다는 주권재민(主權在民)사상을 근거로 하는 공화국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이란 말은 현 시대와 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원시사회에서 대가족단위로 비교적 평등하게 살아가던 인류는 생산력이 발전함에 따라 많은 인력과 땅이 필요해졌고, 그래서 타 부족과 싸우면서 점차 그 규모가 커져갔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자신들은 이끌어 줄 강력한 지도자를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왕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왕정국가들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반드시 바람직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구약에 있는 사무엘 상권 8장이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히브리사람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고, 12지파가 평등하게 연합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나 왕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이웃나라들과 비교하면서, 점차 자신들도 그런 강력한 국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사무엘 예언자에게 와서 다른 나라처럼 왕을 세우자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은 그들에게 너희가 이집트의 폭군으로부터 탈출했던 것을 잊어버리고 왕을 세워달라고 하면, 당신들이 세운 왕이 당신들의 자녀들을 데려다가 군인으로 쓰고, 당신들에게 각종 노역과 세금을 부과해서 힘들게 할 거라고 충고했으나, 그들은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할 수 없이 베냐민 지파 출신 사울을 기름 부어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으로 삼았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역사는 다윗과 솔로몬 같은 임금이 나라를 강력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백성들을 잘못 이끌어서 결국 멸망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 제1독서는 이스라엘과 유다를 멸망하게 만든 왕들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입니다. 예레미아 예언자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귀양살이에 대한 주요책임이 왕들에게 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질책합니다:

이 저주받을 것들아, 양떼를 죽이고 흩뜨려 버리는 목자라는 것들아, …… 내 양떼를 돌보아야 할 너희가 도리어 흩뜨려서 헤매게 하니, 너희의 그 괘씸한 소행을 어찌 벌하지 않고 두겠느냐!(예레 23:1-2)”

그러면서 예레미아 예언자는 미래의 정의로운 왕에 대한 희망을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내가 다윗의 정통왕손을 일으킨 그 날은 오고야 만다. 그는 현명한 왕으로서 세상에 올바른 정치를 펴리라. 야훼 우리를 되살려 주시는 이라는 이름으로 그를 부르리라.(예레 23:5-6)”

그리스도인들은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믿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분은 통상적으로 생각하던 그런 왕과 달랐습니다. 오히려 그 분은 유다와 로마 통치자들로부터 유대인의 왕 나자렛 사람 예수(INRI, Jesus Nazarenus Rex Judaeorum)’라는 죄명으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들의 관점에서 볼 때, 기존질서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왕, 즉 반역죄인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께 신포도주를 들이대며 조롱했습니다. 여기서 그들이 왜 신포도주를 마시게 했느냐면, 당시 신포도주는 노동자들과 군인들이 애용하던 피로회복제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신포도주를 마시게 하여 생명을 연장시켜서 더 많은 조롱과 고통을 주려 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사람들로부터도 심한 조롱을 받으셨습니다. 루가복음 저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조롱하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지도자들의 조롱을 시작으로, ‘군인들이 조롱하고, 마지막으로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마저 예수님을 모독합니다. 오늘 읽은 복음 뒷부분을 보면, 조롱이 계속되는 동안 군중은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48절 참조). 대다수의 사람은 그저 방관자였던 셈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친지들과 갈릴래아 여인들(49절 참조)’만이 예수님 편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모두가 외면한, 아니 조롱받고 경멸당한 비참한 왕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께 묻습니다: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요? 그런데 자기 자신도 못 살린단 말이요?”, “당신은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를 못 살린단 말이요?”

철저한 무력감과 몰이해 속에서 예수께서는 오늘 주보1면 성화에 적혀있는 유명한 말씀,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Pater, Dimitte illis quia nesciunt)”라고 기도하십니다. 평소에 말씀하신 원수를 사랑하라(루가 6:27참조)”는 말씀을 몸소 실천하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또 하나있습니다. 그것은 죄를 회개한 죄수와 예수님이 나눈 대화입니다. 분노와 원망에 가득차서 예수께 화풀이한 다른 죄수와 달리, 그는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함과 동시에 예수님이 무고하게 십자가에 달린 의로운 분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 당신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가 언젠가 실현되는 그 날이 오면,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청합니다. 그는 적어도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 양심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올바른 세상이 현실에선 실현되기 불가능하다고 체념한 상태였습니다. 그러기에 머나먼 종말을 향해 아득히 먼 희망을 겁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전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루가 23:43)”라고 약속하십니다. 죄수가 예수님께 청한 희망의 시점과 장소가 막연했다면, 예수님은 그 때가 오늘이고 장소도 낙원이라고 구체적으로 약속하십니다. 여기서 낙원이란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동산과 같은 단어입니다. 다시 말해, 의인들이 들어가게 될 하늘나라(Kingdom of Heaven)’, 혹은 하느님 나라(Kingdom of God)’입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교회는 한 해를 마감하는 이 날에 우리가 믿는 왕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왕이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상의 왕은 자주 백성들의 염원을 배신하고, 자신의 영달과 권력유지를 위해 나라를 잘못 이끌지만,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왕은 무지한 우리를 대신해 용서를 간구하는 분이시며, 구원을 막연하게 약속하는 분이 아닌, 그 시간과 장소를 구체적으로 약속하시는 분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울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의 피로써 평화를 이룩하셨습니다(골로 1:20)”라고 십자가 사건을 찬미하였습니다.

죽은 이들을 생각하고 기념하는 11월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들었듯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죽음은 낙원으로 들어가는 통과의례입니다. 그 낙원은 태초에 야훼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에덴동산과도 같은 곳입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온전한 사랑과 정의와 평화를 향유합니다. 우리는 그 낙원을 갈망합니다. 그렇지만 그 낙원을 단지 죽음 이후에 갈 곳으로만 생각하진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 나라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인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그 나라를 이루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미 낙원에 들어가 있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향하여 그리스도라면서 왜 우리를 못 살리냐면서 힐난했던 사람들은 '낙원의 신비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낙원에 들어가지 못하고 낙원 밖에서 머뭇거릴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안타까워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빛과 교회의 가르침을 통해 그 신비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큰 은총입니까! 그러니 기쁨으로 한 해를 마감하고 다시 오실 예수님의 성탄을 즐거운 마음으로 맞이합시다.

 

 

우리를 낙원으로 데려가실 것을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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